남해군, 유배문학을 딛고 문학도시로
남해군, 유배문학을 딛고 문학도시로
  • 경남일보
  • 승인 2019.10.2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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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임식(한국토지주택공사 지역상생협력단장)
최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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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 청사 신축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고 있다. 장충남 군수와 박종길 군의회 의장은 지난 9월 17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현 청사 부지에 신 청사를 신축한다고 발표했다. 현 청사는 지난 1960년 건축된 이후 많은 불편을 야기했지만 그동안 ‘고쳐 쓰는’ 군수의 미담이 전국에 알려지는 등 근근이 그 기능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이제 건물의 노후화와 안전사고 우려 등으로 인해 청사신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 추가부지 매입, 문화재 조사 등을 거쳐 2022년 1월 착공을 목표로 차근차근 진행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LH공사는 기본 및 실시설계, 시공 등에 참여하여 지역발전 동반자로서 든든한 기능을 수행할 것이다.

지난 2월 현재 남해군 인구는 4만4000명이다. 그 중 노인인구는 36%인 1만6000명이다. 인구수는 전성기의 13만명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하고 유엔의 초고령사회 기준(노인인구 20%)을 훨씬 초과하고 있다. 각종 보고서에서 소멸가능 지자체의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2018년 2월 현재 매월 2명이 출생하고 56명이 사망한다. 지난 3월에는 상주면 두모마을에 20년만에 아기가 태어났다고 경축하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렸다. 지방의 존재감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현실에서 하늘이 내려준 ‘슬픈 축복’이다. 사실 남해군에는 인구증가를 유발할 수 있는 변변한 시설이나 자원이 없다. 오랫동안 보물섬 관광 이미지가 굳어져 있어서 남해군에 정착해 살고자 하는 이는 많지 않다. 몇몇 탤런트 출신들이 안락한 노후생활을 보내고 있으나 시너지는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2024년 초 새롭게 개관할 신축 청사가 남해군의 오랜 침체를 훌훌 털 수 있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우선 남해군의 독특한 자산인 유배문학(流配文學)을 활용하여 문인들의 정착을 유도하고 각종 이벤트를 연중 개최하여 관광도시에 이은 문학도시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이미 남해는 정을병, 문신수, 백시종 등 걸출한 문인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소설 ‘사하촌’의 작가 요산 김정한(1908~1996)은 7년간 남해에서 교사생활을 했고 진주의 천재시인 동기 이경순(1905~1985)은 1955년~1958년 기간 창선중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유배문학과 현대문학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보물섬 남해, 거기에 정착하는 문인들의 창작활동을 지자체가 적극 지원하고 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쇄도하는 현상은 그냥 상상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남해는 조선시대 당쟁의 역설적인 후과(後果)를 가지고 있다. 고려, 조선시대 약 180여명의 고관, 문인들이 유배와서 많은 작품과 흔적들을 남겼다. 남해의 절경은 이들 유배객들의 시심(詩心)을 흔들어 주옥같은 걸작을 탄생시켰다. 이들은 적거지(謫居地) 남해에 몇 가지 풍습도 남겼다. 남해 방언에 궁중용어가 섞여있고 왕족·사대부들의 풍습이 지금도 남아있다. 2010년 11월 1일 개관한 남해유배문학관은 지역의 든든한 자원이다. 맑고 깨끗한 자연과 풍부한 해산물은 힐링을 넘어 정착을 유혹한다. 어느 조각가의 말처럼 청정 자연은 정서적 안정감을 주고 시간이 느리게 감을 느끼게 한다. 올해 10회를 맞이한 김만중 문학상은 한글 소설문학의 선구자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을 기리고 남해문학을 알리는 좋은 플랫폼이 되었다.

많은 자원을 가진 남해군이 문학도시로 거듭나길 바라며 주옥같은 유배문학을 남긴 몇 분을 소개한다. 백이정(1247~1323)은 고려 문인이다. 원나라 연경에서 성리학 서적과 주자가례를 가지고 왔다. 남면 우지막골에 묘지가 있다. 자암 김구(金絿, 1488~1534)는 충남 예산 출신 조선 중기 문인이다. 1519년 기묘사화로 개령(지금의 경북 김천)으로 유배갔다가 다시 남해로 안치되었다. 남해를 일점선도(一點仙島)라 표현한 화전별곡(花田別曲)의 저자다. 화전은 오늘날 남해의 별칭으로서 남해 지역화폐 명칭도 ‘화전화폐’다. 남구만(南九萬, 1629~1711)은 숙종 때 영의정에 오른 소론의 거물이다. 남인을 탄핵하다 남해로 유배 왔으나 경신대출척으로 남인들이 실각하자 정계에 복귀했다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의 지은이다. 남해 유배 중 망운산과 금산을 탐승(探勝)한 시 2수를 남겼다. 김만중은 숙종의 처삼촌이다. 효성이 지극하고 한글을 사랑하여 어머님을 위한 한글 소설 ‘구운몽’을 남겼다. 평안도 선천에서 해배(解配)된 이듬해(1689년) 다시 남해로 유배 왔다. 남해에서 남긴 시들을 볼 때 적소(謫所)는 노도(櫓島)로 추정하고 유배 3년만에 별세했다.

/최임식·한국토지주택공사 지역상생협력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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