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선과 아집과 오만의 정치
독선과 아집과 오만의 정치
  • 경남일보
  • 승인 2019.10.22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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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위(칼럼니스트)
바바라 터크먼(B.W.Tuchman:조민·조석현역)이라는 기자가 저술한 “독선과 아집의 역사”라는 책을 보면 독선과 아집에 찬 지도자들에 의해 역사가 얼마나 비참하게 엮여져 왔는가를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다. 그는 아집과 우둔이야 말로 “세상에 만연한 지도자들의 만성질환”이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그 아둔함의 원인은 자신의 지위가 영원하리라고 착각한 데에서 연유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17세기 중엽 무려 반세기 동안이나 스웨덴의 총리직에 있었던 악셀 옥센셰르나(Axel Oxenstierna)라는 사람이 자신의 아들에게 남긴 유언을 소개해주고 있었다. “아들아! 이 세상을 얼마나 하찮은 자들이 다스리고 있는지 똑똑히 알아 두거라”고.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피터(Peter) 의 원리”라는 것이 있다. 이 또한 “얼마나 하찮은 사람들이 모든 분야의 정상에 앉아 있는지 알기나 하는가”를 묻고 있는 원리다. “모든 사람은 무능한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승진한다”는 것을 원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역설적으로 설명하면 “최고 정상까지 승진해서 더 이상 승진할 지위가 남아 있지 않게 되면 새로운 욕망이 생길 이유가 사라지고 그 지위의 타성에 젖어 스스로 무능해 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왕자로 태어나서 왕이 된 사람으로 옆에 있는 화로를 치울 줄을 몰라서 죽은 왕이 있다. 17세기 초 스페인의 펠리페 3세라는 사람이다. 잠시 자리를 비운 몸종이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그만 고열에 떠 죽은 것이다. 아둔함과 무능의 극치일 것으로 여겨진다. 지위가 가져다 준 타성에 젖어 스스로 무능해 진 결과라 여겨진다.

이처럼 지도자의 어리석음이 그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국민을 도탄에 빠뜨리게 한 사례는 실로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대표적인 사례로 터크먼은 아스텍왕국의 국왕 목테수마의 경우를 들고 있다. 콜럼버스가 남미대륙을 발견하고 나서 스페인군사가 맨 처음으로 찾아 나선 곳은 멕시코였다. 이때 멕시코의 아스텍 왕국은 신비스러운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되고 있었다. 번쩍이는 황금으로 장식된 궁전에서 국왕은 침략해 오는 스페인 군사에 대항한번 하지 않은 채 맥없이 자신의 나라를 내어 주고 자신도 화형으로 죽는 비극을 연출하였다. 종교적 신념이 망상으로까지 발전된 경우였다.

그렇다면 정치적 신념이 망상으로까지 발전되는 경우는 왜 없을 것인가?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역시 히틀러를 드는 것이 제격이 아닐까 싶다. 1945년에 접어들면서부터 히틀러는 극도의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공황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쟁의 패배가 서서히 눈앞으로 닥아오는듯 하자 그는 위대한 독일국민에게 있어 패배는 있을 수 없는 것이고 패배로서는 살아남을 가치가 없는 존재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는 명령을 내린다. “독일에 있는 모든 공업기지와 통신기지를 남김없이 파괴하여 적군에게 념겨주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 한가하게 남의 얘기를 할 겨를이 없다.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지난 얼마 동안 있었던 조국(曺國)사태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바로 독선과 아집과 오만에 가득 차 있는 상황에 있지 않나 싶어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위선에 위선을 더한 위선자를 법무부장관에 임명하고도 태연하게 광화문과 서초동의 촛불현장을 보고 있었나 싶다. 조국이라는 사람 하나 때문에 나라가 거덜이 나도 괜찮다고 여긴 것인가 아니면 이 일로는 나라가 결단날 일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일까! 조국이라는 사람의 사퇴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는 보지 않는다. 문제는 독선과 아집과 오만에 가득찬 대통령에 있기 때문이다.
 
/김중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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