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길과 광장길
등산길과 광장길
  • 경남일보
  • 승인 2019.10.2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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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술(국립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
사진(경남과기대 윤창술)
경남과기대 윤창술

지리산의 여러 등산길 중 하나를 다 완주했다고 해서 지리산을 다 안다고 할 수 없고, 지리산의 모든 등산길을 다 완주했다고 해서 지리산을 다 안다고 할 수도 없다. 아직 등산길 외에도 지리산엔 숨은 아름다운 경관들이 많으며 또 길마다 지리산은 자신의 여러 매력을 뽐내고 있어서이다. 그렇지만 지리산에 한발만 들였더라도 분명 지리산을 알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지리산을 오르려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본 지리산의 모습을 말하는 것도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우리도 인생이라는 산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오르고 있다. 누군가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포장된 등산로를 따라 오르고, 누군가는 남들이 가지 않은, 그 누구의 발자국도 찍혀있지 않는 곳으로만 오르기도 한다. 수많은 길이 산 위에 있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 길 하나하나가 다 오름의 다른 경치들을 보여주고 있고, 다 저마다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자기가 걸어가고 있는 인생이라는 산의 경치를 그리고 싶어서 칼럼을 기고하고 방송에 출연하기도 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SNS를 통해 각자의 인생길을 자유롭게 피력하기도 한다. 좋은 세상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사회적 현안에 대한 각자의 견해 표출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우리에게 우리의 목소리를 나누는 일이고, 그 목소리 하나하나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에 쫙 갈라진 서초동·광화문의 광장길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만 다를 뿐이다’라는 등산길의 메시지와는 그 성격이 달라 보인다. 양 진영의 대립에 입각한 상황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본인은 객관적이라고 표현하지만 아전인수식 편견과 독선이 개입할 여지가 높다. 이는 일종의 진영 의식에 입각한 개인의 입장인 만큼 결코 완벽한 객관성 유지를 담보할 수 없고, 또 오히려 주관적일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과 관련하여 조선시대 유학자 성호 이익은 “당파싸움이 일어나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벼슬자리는 적은데도 벼슬을 하려는 사람이 많은데 있다”라고 하면서 당쟁은 바로 먹이 다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승자독식이 헌법으로 보장된 체제에서 권력을 잡지 않으면 관직을 얻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권력만 잡으려고, 또한 잡은 권력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싸움이 능사가 된 요즘도 예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어 보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정권을 잡기 위해 상대방을 적으로 보고 그들의 반대편은 어떻게 해서라도 죽게 만들어야만 자신들의 집권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앞섰던 과거의 붕당정치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지금이라고 가정하면 더욱 더.

사실 시민 광장정치의 원조였던 3여년 전의 촛불시위 때도 참석자들은 정치권이 정파별로 단순한 정권획득에 치중하기보다는 민의를 받들어 정치시스템 개혁 내지 다양한 제도개선에 나서 달라고 요청했었다. 하지만 그동안 정치권은 촛불의 민의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으며 지금도 광장에만 의존해 정치적 실리를 챙기려는 듯해 안타깝다. 이렇게 지나온 역사가 여러 차례 증명하듯 제도가 아닌 사람의 선의나 정치권에 맡기는 게 불가능하다면 이번의 광장정국에서는 꼭 근본적인 치유책이 제도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현안이 되고 있는 여러 가지 제도개선을 위한 개혁입법의 완성은 결국 정치의 몫이기에 시민들이 여의도로 또 달려가게 해서야 되겠는가. 이제는 “이렇게 나라가 시끄럽고 이렇게 세상이 소란스러운데 그냥저냥 보고만 지낼 수가 없다”는 소위 중간지대 보통사람들의 한탄이 사라지도록 해 주면 좋겠다. 나아가 약간은 주관적일지라도 편향적이지 않다면 관대한 객관적 범위의 끝자락에는 넣어 주는 아량의 세상이 되길 바란다.

 
/윤창술·국립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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