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38] 반 고흐의 발자취를 찾아서(6)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38] 반 고흐의 발자취를 찾아서(6)
  • 박성민
  • 승인 2019.10.2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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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레미 드 프로방스
사이프러스가 서 있는 밀밭. 고흐, 1889년 6월 유화
고흐의 노란집은 처음이자 마지막 손님으로 머문 고갱이 아를(Arles)을 떠남과 동시에 빛을 잃은 공간이 되어 버렸다.

고흐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회복하다가 다시 시작되는 신경 쇠약 증세로 계속해서 병원을 들락날락해야했다. 정신 분열증 증세는 호전되는 기미를 보이다가도 별안간 나타나 고흐를 괴롭혔고 이러한 모습은 아를 주민들에게 까지도 위험하게 비춰졌다. 결국 제 정신이 아닌 수상한 남자로 여겨진 고흐는 주민들의 민원 때문에 강제로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이후에도 갖가지 망상에 시달리게 된 고흐는 스스로 아를을 떠나 생 레미에 있는 정신 병원에 입원했다. 사실 그에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옆에서 자신을 보살펴 줄 가족도 친구도 없었다.

 
고흐가 머물렀던 생폴병원 방의 모습.
◇생 레미 정신병원

아를에서 20여㎞쯤 떨어져 있는 생 레미 드 프로방스(Saint-Rmy-de-Provence)는 석회암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알피 산맥으로 둘러싸여 고요한 분위기의 있는 작은 마을이다. 고흐의 캔버스에서도 살펴 볼 수 있듯 마을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올리브 나무와 포도밭은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파릇한 생명력이 넘친다. 고흐는 정신병원에서 1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그가 화가로써 10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 삶을 살았던 데다 그마저도 이곳 저곳 오랫동안 발붙이지 못하고 떠돌아다녔던 그간의 흔적을 곱씹어 본다면 이곳에서의 생활과 작품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까지도 고흐에게 어떤 정신적 문제가 있었는지, 그가 어떠한 병으로 고통 받았는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고흐를 담당했던 주치의는 고흐가 심각한 간질 발작 증세를 보인다고 했고, 오늘날 전문가들은 그가 정신병이나 조울병을 앓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고흐가 스스로 정신병원 입원을 자처 한 것은 그가 스스로도 심한 감정 기복을 느끼면서도 극복하려는 의지의 표현 일 것이다. 특히 또 다시 모두에게서 외면 받은 그였기에 의지 할 곳 없는 자신의 마음을 어딘가에 편안히 기댈 곳을 바랬거나, 결혼을 앞두고 있던 동생 테오의 관심이 자신에게서 떠나 버리게 될까싶은 염려의 마음이 앞섰을 것이다.

병원은 요양원이라고 불러야 할 만큼 고즈넉하고 좋은 풍경 속에 숨어 있었다. 고흐는 병원에 환자가 적은 덕분으로 침실과 작업실 두 개의 방을 사용할 수 있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고흐의 주치의는 정신질환 전문의가 아니었으며 고흐가 받았던 치료는 일주일에 고작 두 번의 반신욕 정도였다고 한다. 항상 혼자 병실 밖을 나가는 것이 허용되지는 않았지만, 고흐는 병실 안에서 바라보이는 바깥풍경에서도 무한한 소재를 찾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날에는 바깥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담는 일에 시간가는 줄 모르던 고흐였다. 그림을 그리며 스스로 마음의 위안과 희망을 얻다가도 갑작스런 정신 발작이 일어났을 때는 병원에 있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물감을 삼켜버리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점점 병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날이 적어지면서 고흐는 또 다시 우울함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이 화가의 그림에 대한 애정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었다. 1년여를 병원에서 보내는 동안 고흐는 마치 작품만 생각 할 수 있는 사람처럼 그림을 그렸고, 100여점의 그림이 고흐의 의지와 집념을 증명한다.

이곳이 더 이상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병원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짧게 허용된 방문 시간이 갑갑하고 길게만 느껴졌다. 고흐가 머물렀던 방은 생각보다 훨씬 작았고, 방안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는 풍경은 그가 그려낸 그림만큼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시야를 가로막는 철장이 거슬리진 않았을까. 항상 혼자였던 그가 더 혼자라고 느껴지는 공간은 아니었을까. 이곳에 오면 누구라도 혼자 쓸쓸히 방에 남아 하염없이 바깥 풍경을 쫓았던 고흐가 되는 시간을 맞이할 것 같다.

 
아이리스. 고흐 1889년 5월 유화
◇생 레미의 명

생 레미 시절 고흐의 그림은 아를 시절의 작품들과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여전히 색상을 중요시 했던 고흐였지만, 생 레미 시절 그림에서는 선의 움직임과 형태가 더욱 윤곽을 드러내며 생생해지고 색상이 다소 어두워지는 경향도 보인다. 특히 병실에서 그렸던 작품은 아를에서는 좀처럼 사용하지 않던 색상으로 전체적인 분위기가 침체된 느낌도 든다.

이 시절의 고흐를 살펴 볼 때 우리가 가장 눈여겨보아야 하는 그림의 주제는 사이프러스다. ‘사이프러스’는 서양에서 죽음을 상징하는 나무로 주로 묘지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나무다. 해바라기에 담겼던 고흐의 관심이 사이프러스로 옮겨 오게 되면서 그의 붓질을 멈추지 않게 만들었다. 고흐는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지금껏 어느 화가도 집중해서 그리지 않았던 사이프러스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저 한그루 나무가 고흐의 캔버스에서 유독 돋보이는 이유는 사이프러스를 표현한 초록색이 대조되어 나타나는 배경색과 나무를 표현한 곡선 때문일 것이다. 종종 ‘광기의 곡선’이라고 언급되는 사이프러스를 표현한 곡선에서는 운동감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고 고흐의 독특한 붓질 때문에 살아 숨 쉬는 느낌마저 든다.

세상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있다 보면 오히려 세상을 더 객관적이고 진실 되게 보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고흐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보려 한 듯하다. 자신의 생각과 세계에서 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고흐는 땅에 뿌리내린 모든 것들이 비록 그것이 특별하지 않은 꽃이고 나무일지라도 자신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아내는 ‘고귀한 것’ 이라고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그의 정신은 에너지와 총명함을 잃어가고 있지만, 그는 화가로써의 정점에 서 있고 그림을 향한 넘치는 애정과 그것을 넘어선 광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고흐는 애초에 그림으로 먹고 살 수 없는 화가를 자초 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집념과 열정이 흘러넘치는 그림들이 단 돈 몇 만원에 팔리는 그림이었다면 그 열정은 그림을 팔기위한 열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의 그림이 외로움과 고독함이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난 진실 된 그림이었기에 사람들은 그것을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림이 주는 힘이 이토록 강했던가!



 
별이 빛나는 밤, 고흐 1889년 6~7월 유화
생폴병원 정원의 소나무와 사람. 고흐, 1889년 유화
고흐가 입원해 있었던 생레미의 생폴병원 입구에 있는 고흐의 동상은 시든 해바라기를 들고 앙상한 몸과 슬픈 표정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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