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 가을 저녁의 시
[강재남의 포엠산책] 가을 저녁의 시
  • 경남일보
  • 승인 2019.10.2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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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저녁의 시(김춘수)

누가 죽어 가나 보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 세상 외롬 속에서
물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
그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
온 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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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기운이 목덜미를 스친다. 컵을 두 손으로 감싸고 국화가 만발한 꽃밭에 눈길을 둔다. 손으로 전해지는 온기가 다정하다. 국화꽃색 닮은 벤치에 앉아 따듯한 차를 마신다. 찻물에서 마른가을 냄새가 난다. 한창 단풍물이 들어야 할 나무에 천천히 눈길을 주며 하나 둘, 중얼거린다. 아끼는 나무 몇이 물기 없이 시들하다. 생강나무는 연한 잎이 예뻐 두 계절을 내내 아껴두었는데. 이대로 시들 줄 알았다면 몇 장 따서 책갈피에 넣어둘 것을. 잦은 태풍에 계절은 제 기능을 상실했나 보다. 나무의 마음을 헤아린다. 자연이 움직이는 대로 따르는 그들의 질서가 고요하다. 그러면서 순리를 순리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사람뿐이 아니겠는지를 생각한다. 부조리와 타협하고 뒷거래는 적당히 눈감을 줄 알아야 하며 음지에서 야합하는 사람들. 그들의 심리는 지천명을 지나는데도 알 수 없으니 헛살았나보다. 볕살이 고운 쪽으로 살짝 몸을 옮긴다. 무심한 생각으로 맥없이 앉아 있는 내게 어깨를 툭 치는 나뭇잎. 이봐, 소식은 허공에 있는 거야, 물같이 흐르는 날들에 있는 거야, 새로운 기별을 받는다. 모든 것 내어주고 더 내어줄 것 없어 안타까운 계절. 풀과 나무와 산과 언덕을 단정하게 정리하는 가을은 죽음과 연대하는 계절. 깊은 가을로 접어들며 나는 당신을 꿈꾼다. 땅으로 눕는 나뭇잎 따라가면 더 낮아지는 내가 보이겠다. 철새들 날아간 서쪽 하늘에 정한 목숨 하나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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