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호칭에서부터
혁신, 호칭에서부터
  • 경남일보
  • 승인 2019.10.3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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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경남사회적가치지원센터장)

우리 사회에서 호칭 문화와 위계서열은 기업 문화에 뿌리 내려져 있다. ‘위 직급의 사람이 명령하는 것을 아랫사람은 무조건 따른다’라는 수직적인 사고방식이 고착화된 기존 조직 문화에서 ‘나의 의견은 말해야 한다’라는 요즘 젊은 세대와의 갈등은 어찌 보면 예정된 수순일 것이다. 이런 조직 내 갈등을 줄이고 새로운 방식의 일 문화를 만들기 위해 최근 여러 기업들이 ‘직급·호칭 파괴’를 내세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직급·호칭파괴의 선두주자는 CJ그룹이다. CJ는 국내 대기업 최초로 직급을 없애고 호칭을 ‘~님’으로 통일한 기업이다. 2000년부터 모든 직원이 이름 뒤에 ‘님’을 붙여 부르고 있다. 공식 석상에서 이재현 회장을 부를 때도 ‘이재현님’이라고 부른다. 아모레퍼시픽도 2002년부터 호칭을 ‘님’으로 통일했는데, 아모레퍼시픽도 총수인 서경배 회장을 부를 때, ‘서경배님’으로 부른다고 한다. 이 밖에도 네이버(2014년), 삼성(2017년), SK텔레콤(2018년), LG유플러스(2018년)등 많은 기업들이 이름 뒤에 직급대신 ‘님’을 붙이는 트랜드에 동참을 하고 있다. 여기에 ‘님’이 아닌 다른 호칭을 쓰는 기업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삼성그룹 광고계열사 제일기획은 2010년 사내 호칭을 ‘프로’로 통일했으며, 직급도 ‘사원-대리-차장-국장-수석’에서 ‘C1(사원·대리)-C2(차장, 3년차이하 국장)-C3(4년차이상의 국장과 수석)’으로 간소화했다. 롯데그룹 광고계열사 대홍기획은 2018년 ‘쎔’이라는 호칭을 도입했는데, ‘쎔’은 캠페인(Campaign)의 앞 글자 ‘C’와 ‘최고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전문가(Experience Master)’의 약자인 ‘ⓔM’의 합성어라고 한다. SK플래닛 광고사업부는 2008년부터 ‘플래너’라는 호칭을 도입했는데, 2017년 SM엔터테인먼트그룹에 편입하여 ‘SM C&C’로 출범한 뒤에도 ‘플래너’라는 호칭은 그대로 유지 중이라고 한다.

이처럼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국내 유명기업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직급과 호칭파괴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인데, 그렇다고 거의 대부분의 대기업이 이런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열거한 숫자를 다 합쳐도 전체 기업수로 보면 그 숫자는 몇 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호칭 파괴를 위해 현재 도입을 검토 중인 기업도 적지 않지만 거의 대부분은 관망하고 있거나 도입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시행 중에 있는 기업을 빼면 검토 중에 있는 기업 또는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자는 기업 그리고, 부정적 의견을 가지고 있는 기업으로 나눌 수가 있다. 검토 중에 있는 경우는 삼성전자가 직급의 간소화와 호칭의 변경을 선언하면서 다른 기업들에게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고, 부정적 의견을 가지고 있는 기업의 경우는 KT와 포스코의 영향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포스코의 경우는 2011년 영어타이틀(Manager-TeamLeader-GroupLeader)로 바꿨던 직급이 2017년부터 ‘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영어 호칭으로 바꿔도 내부에서는 과거의 호칭을 그대로 쓰는 등 원했던 조직문화의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것이 회귀의 이유였고, KT도 2009년부터 5년간 직급 대신 ‘매니저’라는 호칭을 사용했지만 2014년 기존 체제로 돌아오면서 똑 같은 이유를 말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실효성 문제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유행처럼 ‘호칭 파괴’를 선언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급변하는 대내외 경영환경 속의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한 시기이고 기존의 인사제도인 연공 중심, 수직적인 위계구조에서 탈피해 새 인사제도를 기반으로 일하는 방식과 의사결정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미래 산업에 빠르게 대응 할 수 있는 민첩한 조직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지 않을까?

호칭 파괴는 수평적인 조직문화로 직원들의 창의적 활동을 늘리기 위한 것이다. 자리만 잘 잡히면 임직원간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해져 업무 효율성이 높아지고, 임직원 간 서로 존중하는 기업 문화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조직 혁신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호칭 파괴에 앞서 ‘직원은 소중하게, 관계는 평등하게’라는 생각으로 구성원 모두가 일하는 자세를 바꿔야 할 것이다.

/이수경(경남사회적가치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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