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한글표기 ‘김홍권 비석’ 문화재 추진
일제강점기 한글표기 ‘김홍권 비석’ 문화재 추진
  • 최두열
  • 승인 2019.11.04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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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군·경남독립운동연구소, 27년간 독립운동가 행적 담겨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한 채 길가에 홀로 세워졌던 하동지역 독립운동가의 작은 비석 하나가 행정과 한 재야사학자의 노력으로 세상 밖으로 나와 문화재 등록이 추진되고 있다.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는 일제강점기인 1939년 세워진 하동 출신 독립운동가 하우(何尤) 김홍권(金弘權·1892∼1937·양보면·건국훈장) 선생의 비석을 국가문화재로 등록 추진한다고 4일 밝혔다. 이 비석은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173-5 도로변에 서있다.

최근 비문을 분석하고 문화재 등록을 신청한 재야사학자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은 “이 비석은 아직 100년이 안된 근대기의 비석이지만 전국적으로 한글을 중심으로 새긴 비석이 워낙 드문데다 독립운동가의 행적이 담겨있어 역사적 의의가 큰 자료”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제강점기에 한글 위주의 비석을 세운다는 것은 그 자체가 독립운동으로 볼 수 있어 독립운동가의 예우와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는 차원에서 국가문화재로 등록·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홍권(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의 비석은 전면 중앙에 ‘故何尤金弘權之碑’(고 하우 김홍권 지 비)라 새겨져 있으며, 김홍권이 세상을 떠난 지 2년 후 1939년에 그의 절친한 벗이자 독립운동가인 김시평(김범부)이 비문을 짓고 그의 아우 김후권이 세운 ‘한글 위주의 비석’으로 김홍권의 독립의지와 민족의식이 담겨있다.

비문은 좌측에서 시작해 뒷면과 우측으로 이어지며 뒷면에는 그가 태어나고 세상을 떠난 시기와 장소, 경술년(1910년)부터 집안과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고 20여 년 동안 모진 풍상을 겪으며 활동(독립운동)했다는 내용과 그가 한 일(독립운동)은 본디 쉽게 이룰 수 없는 일이라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병을 얻어 45세에 생을 마쳤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리고 우측에는 아들 셋의 이름 炳成(병성)·炳洪(병홍)·炳仁(병인)과 己卯一月八日(기묘(1939년) 1월 8일)이라 새겨진 설립연도, 비문을 지은 一善 金始平(일선 김시평)의 이름, 묘소 위치가 새겨져 있다.

사천시 사남면에 거주하는 선생의 손녀 김성숙(72) (사)가족상담힐링센터 대표는 “그동안 조부님의 행적이 담긴 비석의 내용을 잘 모르고 지내왔는데 이번에 비문 내용을 자세히 알게 됐다”며 “문화재 등록을 위해 애써주시는 윤상기 군수와 정재상 소장께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최두열기자

독립운동가 김홍권 선생의 비석(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소재 1939년 세움)/하동군/











 
독립운동가 김홍권 선생/하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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