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의 재발견
풍류의 재발견
  • 경남일보
  • 승인 2019.11.05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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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진주교대 교수)
진주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창의도시로 선정되었다. 진주 천년의 도시사(都市史)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진주는 그동안 예술 고장이니 교육 도시니 하면서 지역의 정체성을 찾아왔다. 이제 창의성이 있는 도시로 세계화되었으니 온고지신의 삶을 양식화하는 품격 있는 삶의 현장으로 발전하였으면 한다. 진주가 오늘날의 예향으로 인정된 것은 조선 후기부터이다. 진주는 예로부터 춤의 고장으로 잘 알려졌다. 북평양에 남진주요, 남원 소리에, 진주 춤이라고 했다. 가창 문화도 남다른 데가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진주는 풍류가 깃든 곳으로 잘 알려졌다. 1950년대만 해도 아침의 해가 뜰 무렵이면 옥봉동 근처에 기생들의 목 푸는 소리가 곱게 들렸다는 증언들이 남아있다.

풍류는 무엇인가? 이 말의 시작은 중국의 진(晉)나라에서 비롯하였으니, 2000년 정도 되어간다. 바람(風)을 갈무리하는 것이 산이요, 흘러가는 것(流)이야말로 물이니, 풍류는 산과 물을 합성한 말이라고 보인다. 옛 역사서에도 ‘유오산수’ 라는 말이 있다. 화랑, 즉 ‘꽃사내(꽃미남)’ 들이 ‘모둠살이’를 하면서 산수를 유람하면서 노닐었다. 최치원의 말마따나, 풍류는 나라의 현묘한 도이다. 우리의 풍류는 우리의 토착신앙과 관련을 맺은 정신세계라고 본다. 그윽하고 미묘하기에 언어로 표현하기가 어려워 중국에서 유입된 한자어 ‘풍류’ 라는 유명론(唯名論)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이 풍류가 제도화된 것은 신라 진흥왕 때였다. 풍류를 실현하는 집단이 꽃사내들이 모인 화랑이었다. 서기 575년 진흥왕 때의 일을 보면, 화랑이 상마도의와 상열가악을 실천했다고 했다. 함께 도의를 연마하고, 함께 음악을 즐겼다. 이 집단은 삼국통일이란 큰일을 남기고,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진주는 조선 후기에 엄청난 정치적인 좌절을 겪는다. 인조반정(1623)과 무신란(戊申亂.1728)은 진주와 경상우도를 초토화시켰다. 이 지역에서 문화적으로 진작시킬 수밖에 없는 것은 풍류, 즉 예술뿐이었다. 진주의 가무(교방문화)와 통영의 공예품(12공방)은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쳤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시간적으로는 압축 사회요, 공간적으로는 과밀 사회다. 압축 성장을 이루었으니, 압축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나라가 좁다 보니 악플러와 가짜뉴스 메이커가 날뛴다. 음악마저 오빠부대들이 이익집단화한지 오래다. 이 압축과 과밀의 사회에 온갖 ‘-빠’ 들의 맹신 집단과, 많은 ‘-충’ 들의 혐오 집단이 동거하고 있다. 풍류 정신이 없어서다. 함께 도의를 연마하고 함께 음악을 즐기는 여유가 사라져서이다.

박경리의 ‘토지’를 꿰뚫는 사상은 이른바 산천(山川) 사상이다. 거대한 산과 도도한 강에 비하면 인간의 마음은 협애하다. 산천의 포용성 속에는 군주를 위한 생각도 백성을 위한 생각도 없다. 민족주의도 사회주의도 없다. 정승판서와 백정의, 왜놈과 조선 놈의 차별도 없다. 지금의 사정을 말하면, 산천 사상에는 보수 반공과 진보 반일로 나누어지지 않고,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쪼개어지지 않는다. 산천은 무언가? 풍류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이달 29일 오후에 진주교대에서 ‘진주 지역학’ 에 관한 세미나가 크게 열린다. 나 역시 ‘진주 지역의 가창문화’라는 주제를 발표한다. 수많은 시민들이 참석해 대화의 장을 함께하면 좋겠다.
 
/송희복(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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