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에서 바라본 ‘시대정신’과 ‘리더’
‘리스본’에서 바라본 ‘시대정신’과 ‘리더’
  • 경남일보
  • 승인 2019.11.0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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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호(서울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前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오동호
오동호

몇 년 전 상영된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한 폭의 리스본 풍경화다. 1970년대 혁명의 시절에 뜨거운 태양아래 마주한 청춘들의 고뇌와 사랑, 리스본의 아름다운 풍광이 우리를 사로잡는 명화다. 나는 몇 해 전부터 포르투갈에 빠져있다. 2016년 여름, 포르투와 리스본에 며칠 머물면서 도시 곳곳을 탐험하기도 했다. 작년 3개월간의 산티아고 순례에서는 아예 한 달간 스페인 산티아고에서 리스본까지 600여km의 ‘포르투갈 카미노’를 걸으면서 포르투갈의 속살과 마주했다.

나의 긴 순례의 종착지인 리스본 벨렝지구, 이 곳이 바로 대항해시대의 전초기지이다. 테주강 항구에 우뚝 솟은 ‘발견기념탑’에는 대항해시대의 리더 엔히크 왕자를 필두로 아폰수 5세 국왕, 인도항로를 개척한 바스쿠 다 가마와 당시의 프론티어들이 하나하나 조각돼 있다. 바다의 끝이 ‘보자도르 곶’이라고 다들 믿고 있을 때, 그들은 목숨을 내걸고 머나먼 항해의 길을 나선다. 1434년에 ‘공포의 곶’으로 불리던 ‘보자도르 곶’을 넘고, 1487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희망봉을 넘는다. 드디어 1498년에는, 인도항로를 개척하여 대항해시대의 정점을 찍는다. 그때 테주강에는 2000여척의 배가 진을 치고 있었다고 한다. 16세기는 가히 포르투갈 제국의 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변방의 조그마한 나라 포르투갈이 대항해시대를 열어나갔을까? 포르투갈은 내륙은 스페인과 접하고 있고, 해안은 거친 대서양과 맞닿아 있다. 이들과 싸워 이기던지 아니면 굴종되던지 해야만 하는 약소국의 운명을 갖고 있다. 새로운 교역로를 개척해 백성들을 먹여 살려야하고, 이슬람세력으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지켜 내야만 하는 현실적 필요성이 대항해시대를 개척한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그들은 이들과 싸워 이겨낸 것이다. 바다와 함께 살고 죽는 포르투갈 민족이 만들어 낸 결과다. 국민시인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가 ‘바다는 포르투갈인의 눈물’이라고 노래한 것도 이해가 간다. 무릇 역사의 변곡점에는 늘 영웅이 있다. 당시 포르투갈에도 대항해시대의 시대정신을 구현해 낸 ‘엔히크(Enrique)’왕자라는 걸출한 리더가 있었다. 그는 포르투갈의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이 무엇인가를 알았고, 그 비전을 실현하기위한 구상과 전략도 알았다. 무엇보다도 지칠 줄 모르는 도전정신과 불굴의 용기, 인내심을 가진 리더였다. 대항해 개척이라는 그랜드 디자인을 갖고, 세우타도 정복하고, 전진기지인 ‘사그레스’도 건설했던 것이다. 그가 죽은 후에도 대항해 탐험은 계속됐다. 그가 진두지휘한 대항해시대의 플랜은 이미 포르투갈의 시대정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로 다가 가보자. 지금 우리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한번 생각해 보자. 작금의 우리 사회는 많이 분열돼 있다. 이념 간에, 세대 간에, 지역 간에, 나아가 남북 간에도 너무 갈라져 있다. 광화문 광장에서 들리는 목소리와 서초동 거리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너무나도 다르다. 90년대 생이 몰려오는데 그들의 윗세대는 이른바 ‘꼰대’라고 멸시 당한다. 서울은 만원이고 지방은 비워간다. 남북 분단의 끝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갈라진 세력 간에는 살기마저 느껴진다. 이래서는 우리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가 없다. 꼭 하나가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신 관용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통합과 연대의 사회’로 나가야 한다. 진정한 리더라면 분열과 갈등의 현실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생채기가 나더라도 부딪혀 뭔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

가을의 끝자락에, 작년 연말에 리스본의 테주강 항구에서 마주한 대항해시대의 ‘시대정신’과 그 것을 구현해 낸 ‘리더’가 다시 그리워진다.

/오동호(서울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前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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