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 손잡이 없는 칼
악플, 손잡이 없는 칼
  • 경남일보
  • 승인 2019.11.0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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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희(경남대학보사 편집국장)
‘펜은 칼보다 강하다’ 유명한 서양 속담이다. 이 말은 분명 펜이 칼보다 강하니 사람을 괴롭히는 데 쓰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펜을 칼처럼 휘두른다. 사람들은 온갖 이유로 그 사람들의 괴로움을 두 눈을 감은 채 외면한다. 그 사람들의 펜에서 나오는 잉크는 검은색이 아니라 빨간색이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지난달 14일, 가수 설리가 세상을 떠났다.

설리는 오랜 시간 동안 악플에 시달려왔다. 사람들은 설리가 잘사는 모습을 보여줄수록 더욱더 거세게 질타했다. 그녀의 옷차림, 발언, 행동 등 그녀의 행보 하나하나가 그들에게는 눈엣가시에 불과했다. 나는 최근 설리가 방송에 나오는 걸 보고 막연히 악플을 극복한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페북으로 그녀의 죽음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지만, 금세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설리에 대해 댓글 한 번 단 적이 없었지만 그녀의 소식은 충격적이었고 죄책감이 생겼다. 악플을 달진 않았지만 외면했다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죄책감에 댓글조차 달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녀의 마지막 기사는 애도를 표하는 댓글과 악플, 그리고 그 악플을 비난하는 댓글 등으로 넘쳐났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악플로 인해 자살했다는 사람에게 또 악플이 달리는 일이란.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게 느껴지지 않는 걸까.

이를 해결하고자 뒤늦게 대처방안이 떠올랐다.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자, 댓글 창을 닫자, 아이디와 IP를 전체 공개하자 등 여러 방안이 나오더니 결국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가 책임을 지도록 하는 ‘설리법’이 발의되었다. 악성 댓글자를 처벌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명칭을 꼭 설리법으로 해야 할까 싶다. 과연 이를 설리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나 역시 인터넷 실명제에 동의하진 않는다. 사람들이 많은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하려면 익명은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함부로 펜을 휘두르진 않아야 한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듯 언제 어느 사람이 나로 인해 상처를 입을지 모른다.

제목처럼 악플은 손잡이 없는 칼이다. 찌르는 사람도 다치지만 본인 역시 상처 입게 된다. 그리고 그 칼끝은 어디로 향할지 아무도 모른다.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 여러 개의 서슬 퍼렇고 날카로운 칼날이 당신에게 향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박수희(경남대학보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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