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미궁(迷宮)이고 미망(迷妄)이다
아직도 미궁(迷宮)이고 미망(迷妄)이다
  • 경남일보
  • 승인 2019.11.0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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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옥윤(객원논설위원·수필가)
그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갖춘 사람이다. 상위 1%에 해당한다. 명문학교 출신에 대학교수와 정부요직도 경험했다. 그는 명사수(?)였다. 쏘는 대로 과녁에 맞아 사회의 반향을 일으켰고 옳은 말만 가려 할 줄도 알았다. 가진 자이면서도 약자의 편에 섰고 진보를 자처했다. 대통령도 혹할 정도여서 후보시절부터 장차 법무장관으로 점찍을 정도였다. 갖춘 사람의 이색행보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의식 있는 지식인으로 치부됐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의 추락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죄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그는 위선자, ‘합법적 불공정’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표리부통(表裏不同)한 사람이었다. 대통령도 속았고 국민들도 속았다. 그를 철석같이 믿고 국회청문회에서 호위무사, 홍위병을 자처했던 국회의원들은 멘봉상태에 빠졌다. 유력 대선후보로 손꼽히던 유명작가는 그를 옹호하다 급기야 해외로 피신(?)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청와대가 잘못된 인사라고 자인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조로남불’, ‘조적조‘등 숱한 신조어와 비아냥거림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아직도 그를 믿고픈 사람들이 서초동, 여의도에 집결하고 표리부동에 가치의 기준마저 흔들려 분노한 군중들이 광화문을 메우고 있다. 일찍이 장관 한사람 때문에 국론이 이토록 분열된 양극화를 본 적이 없다. 모든 국민이 그의 세치 혀에 놀아났고 그 후유증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조국으로 인한 우리사회의 천격화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원들의 정제되지 않은 원색적, 폭력적 언어유희는 이미 습관처럼 고착화되고 국정감사를 받는 처지의 청와대 간부가 국회의원을 향해 손가락질은 물론 고함을 지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청문회 잘 했다고 시상하는 야당이나 진영논리에 매몰된 여당이나 천격이긴 마찬가지이다. 마침내 정치를 그만두겠다는 국회의원이 나오기까지 했다. 언젠가 모 재벌총수가 우리의 경제는 2류이고 정치는 3류라고 말했다가 뭇매를 맞은 적이 있지만 누가 뭐래도 우리의 정치수준은 3류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3류정치의 뿌리는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상대방에게 무차별적으로 쏘아대는 말의 총질에서 비롯된다. 보다 자극적인 언어로, 폐부를 찌르는 막말로 우위를 점하려는 천격에서 정제된 품격은 실종된지 오래이다. 이런 와중에 최근 일고 있는 화합과 소통의 언어 주창이 주목을 받는다. 말폭탄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정치다운 정치를 해보자는 의미로 보인다. 아직은 작은 흔들림에 불과하지만 국민들의 가슴에는 진한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다.

주목받는 것은 총리의 언어습관이다. 그는 좀처럼 자극적인 언어를 쓰지 않는다. 최근 잘못된 정보로 말실수를 한 적이 있고 때론 외국어를 그대로 통역한 듯한 모호하고 수사적인 표현도 있지만 대체로 신중하다. 격식이 있고 젊잖아 상대방을 배려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그런 언어습관 때문인지 상대방도 총리앞에선 격식을 갖춘다. 신중함에서 오는 언어습관이 품격을 말해주고 믿음을 심어준다. 좀처럼 허언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밑바탕이다. 그의 인기가 고공행진을 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우리의 정치권이 최소한 총리만큼만 순화되고 정제된 언어, 신중한 젠틀맨십을 가진다면 최소한 3류정치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 거기에 소통과 합의가 덧붙여진다면 우리의 정치지형도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천격정치는 국민을 미궁(迷宮)과 마망(迷妄)에 빠트린다.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갈라놓고 세치 혀로 선동하고 세불리기에 급급한다. 이제 곧 선거의 계절이 다가온다. 지난 4년의 악몽에서 벗어나려면 국회부터 바꿔야 한다. 국민을 미궁과 미망에 빠트리고 진영의 이익과 자신의 입신이 우선인 사람을 가려내야 한다. 과잉충성, 홍위벙, 영혼 없는 호위무사를 가려내야 한다. 선출될 수 있는 자격의 기준은 품격 있는 언어습관과 소통, 그리고 합의정신에 훈련된 사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알고 싫은 말도 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권력은 유한하고 진영은 선거 때만 되면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리더가 추락하면 동반추락 할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알고 자중자애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화무는 십일홍임을 알면 금상첨화다.
 
/변옥윤(객원논설위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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