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오류를 범하고 돌아오다
행복한 오류를 범하고 돌아오다
  • 경남일보
  • 승인 2019.11.0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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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화(진주문협 상임이사·시인)
이미화 이사
이미화 이사

이른 아침 ‘카톡’ 소리에 잠을 깬다. 단체 방 지인들의 안부겠지 싶어 그냥 두려다 괜히 궁금해져서 휴대폰을 연다. 요즘 카카오 톡에 많이 오르내리는 시와 사진과 음악을 편집해 놓은 동영상이다.

동영상을 열어보니 자막으로 흐르는 시 ‘가을이 오면’의 작가가 윤동주 시인이란다. 하늘과 바람과 별 그리고 시로 상실과 어둠, 두려움을 이겨나가려던 윤동주의 색깔과 맞지 않아 얼른 책장에서 시집을 뽑아냈다.

아침밥도 잊은 채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를 읽는데 커다란 청년 윤동주의 ‘자화상’이 의자에 앉아 지켜본다. 시집 한 권을 가슴에 담는 동안 온몸에 전율이 일고 끝내 눈물이 흐른다. 문학청년에서 저항 시인, 스물여덟 살 짧은 생애가 안타까웠으며 그의 작품 속 애틋한 길을 거닐어볼 수 없다는 것이 슬펐다. ‘가을이 오면’시가 윤동주 시집에 있는지 알아보려다 말고 아무래도 내가 시인을 만나러 길을 나서야겠다.

윤동주 시인이 쓴 원고를 보관했던 섬진강변의 작은 집, 정병욱 가옥을 찾아 광양 망덕포구를 향했다.

지인이 보낸 동영상 속의 시에 작가가 윤동주라고 표시해 놓은 것은 오류임에 분명했다. 나중에 그 시의 작가는 ‘좋은 생각’ 의 발행인 정용철님이라고 알게 되었다.

별을 노래하던 시인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옆의 산을 깎아 놓은 비탈진 곳에 노란 산국화가 환하게 피었다. 한반도 끝자락인 남해에서 태어난 정병욱과 멀리 북간도에서 태어난 윤동주의 간절한 눈빛처럼 맑게 빛났다. 세월이 묻어나는 그곳에는 ‘시를 품어 빛을 전한 정병욱 가옥’이라는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꼈다.

살벌하고 모질은 일제에 맞섰으니 시집을 펴내지 못했다. 열아홉 편의 시 원고를 친구 정병욱에게 보관해 줄 것을 당부하고 돌아설 때 포구에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아프게 시인의 뒤를 따라오지 않았을까. 정병욱의 가족은 마루 아래에 숨겼던 이 원고를 목숨처럼 지켜 해방이 되고 나서 윤동주의 유고 시집으로 출간하게 된다.

정병욱 가옥은 청년 윤동주를 시인 윤동주로 영원히 살아있게 했으며 묻힐 뻔 했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를 세상 밖으로 불러내었던 곳이다. 시를 품고 있었기에 노려보는 도끼눈을 피해 답답하고 애가 타는 그 시간들이 포구의 노을에 잠겨 붉게 물들고 있다. 오류를 바로 잡으려다 행복한 오류를 범하고 돌아온 날 또 하루가 저문다.

 
/이미화(진주문협 상임이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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