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편하고 부드러운 우리말을 쓰자
쉽고 편하고 부드러운 우리말을 쓰자
  • 경남일보
  • 승인 2019.11.1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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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국립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시인)
박재현 교수
박재현 교수

글날이 지나갔다. 한글의 우수성은 두말할 것 없이 쉽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거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말이고, 무슨 말을 해도 다 통한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도 쉽게 의사소통할 수 있다. 그러나 꼭 어려운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 뜻이 정확히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사용하는 때도 많을뿐더러 듣는 사람의 귀에 거슬리는 경우도 흔하다. 산림분야 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도 그런 일들은 비일비재할 것이다. 예를 들면, 사방공사나 산림토목공사장에서 흔히 듣는 용어 중에는 ‘법면(法面)’이 있다. 우리 말로 쉽게 풀어 표현하면 ‘비탈면’이다. 국어사전적 의미로는 ‘둑의 경사면, 또는 호안(護岸), 땅깎기 따위로 생기는 경사면’이란 뜻이다. 한마디로 경사진 비탈을 말하는 거다. 그걸 꼭 한자어를 사용한다. 쉽고 편하게 ‘비탈면’ 하면 될 것을 꼭 ‘법면’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했다고 의미가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요즘 학생들은 오래전 ‘우리말순화’에 의해 ‘비탈면’이라고 배운다. 필자도 학생들에게는 비탈면을 가르칠 때 ‘경사=물매=구배’와 같이 같은 말이고, ‘법면 = 경사면 = 비탈면’이라고 가르치면서도 우리말인 비탈면이 좋으니 그리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대체로 현장에 나가면 꼭 법면이라고 사용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니 얼마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법면이라고 사용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한자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우리 말 가운데 뜻이 통하는 단어들이 많으므로 순우리말만으로는 해석이 안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한자도 익혀야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말을 더 잘 사용하고 어휘력을 높이기 위해서, 특히 언어의 이해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한자가 아주 중요하다고도 강조한다. 그러나 한자를 생각하는 측면에서도 이건 아닌 것이, 법면은 한자로 법면(法面), 이 단어를 해석하자면 ‘법(法)으로 정한 면(面)’이라는 의미가 된다. 물론 둑이나 호안, 절토와 같이 공사에 사용하는 경사면은 일정한 물매를 정해서 그에 맞춰 정한 경사면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일반적인 산지와 같은 비탈면은 일정한 경사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하여,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경사면은 일견 법면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경사를 가진 비탈을 비탈면이라고 하면 훨씬 이해도 쉽고 사용도 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선배들로부터 그렇게 사용하는 것을 배웠으니 자연스레 그 말을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갑자기 다른 말로 바꿔 사용하기도 그렇고, 입에 익숙하지도 않고. 그러니 아직도 우리말순화는 요원한 일일 수도 있다.

산림청이 최근 ‘국유림의 경영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등 10개 법령에서 쓰이는 어려운 한자어와 전문용어를 우리말로 대체하거나 쉬운 용어를 함께 표시하도록 변경했다. 그동안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던 잘 쓰지 않는 한자어, 전문용어, 외국어 등을 쉬운 말로 대체, 국민이 산림행정을 보다 쉽게 이해하고 쉽게 법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산림보호법 시행규칙’의 ‘한해’는 ‘가뭄해’로, ‘임상’은 ‘숲의 모양’으로, ‘육안’은 ‘맨눈’으로 각각 변경하고,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의 ‘모수작업’은 ‘어미나무작업’으로, ‘관목’은 ‘관목(작은키나무)’로, ‘목탄’은 ‘숯’으로 각각 변경했다. ‘산지관리법 시행규칙’의 ‘퇴비사’는 ‘퇴비저장시설’로, ‘세륜시설’을 ‘세륜시설(바퀴 등의 세척시설)’로, ‘수종’을 ‘나무의 종류’로, ‘재적’은 ‘나무부피’로 바꿔 표기했다. 비록 늦은 듯하지만 많은 사람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우리말 표현으로 바꾼 것은 잘한 일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실제 산업현장에서는 이러한 말들이 쉽게 바뀌고 있지 않다. 토목현장에서는 아직도 일본 말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고, 앞서 말한 한자 말들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말들과는 다른 말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현장에서 활용되는 말들을 현장감독이나 감리자 등 그래도 우리말순화에 익숙한 사람들이 일터에서 이런 말들을 우리말로 바꾸어 부르는데 애써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막 배워서 사회로 나간 학생들이 현장에서 헛갈리지 않는다. 더불어 우리말에 대한 애착도 커질 수 있다. 필자도 그렇지만 현장에 나가서 그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갑자기 튀어나오는 일본말이나 한자어 등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않는 말들이 나올 때는 귀에 거슬리거나 ‘우리말이 좋은 데’를 생각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만큼 산업현장에서는 아직도 우리말이 아닌 말들을 많이 사용한다. 그것이 마치 완전한 전문용어처럼 이해되고 통용해야만 하는 말인 것처럼 말이다.

말은 쉽고 이해가 빨리 되어야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우리말이라면 더욱더. 굳이 우리말을 사랑하자는 게 아니다. 적어도 순화해서 사용하자는 거다. 쉽고 빠르게 이해되는 우리말로.

/박재현(국립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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