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진(경상대신문 편집국장)
어느 교수님은 약 10년간 박사 과정까지 수료하면서 대학에서 가을을 보았던 기억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연구에 집중하느라 그러셨다며 아쉽다고 웃으셨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은 이제라도 가을이 온 것을 보시고, 학생들에게 가을의 정취를 잘 느껴보라며 야외수업도 하신다. 하지만 우리 세대가 바쁜 일상을 뒤로 할 수 있게 느긋해질 때쯤에는 여유를 가져도 가을을 돌아볼 수 있을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지난 몇 십년간 운전을 해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요즘은 차 앞 유리에 달라붙어 죽는 벌레가 적어 좋다”고 말한다. ‘바람막이 유리 현상(Windshield phenomenon)’이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환경의 파괴가 잘 드러난 하나의 예시라고 할 수 있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존재로 느껴지는 곤충은 가장 성공적으로 번성한 생물군이며, 지구상 모든 서식지를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식물들 간 수분의 매개체인 동시에 먹이사슬의 가장 바깥에 존재하여 모든 생물체의 개체수를 지탱하고 있다. 그러나 ‘바람막이 유리 현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곤충의 양이 줄어들고 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인류 때문이다. 여러 세대에 걸쳐 농업이 산업화되면서 살충제를 뿌린 결과이며, 지속되고 있었던 지구온난화로 기후가 급변한 결과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곤충이 줄어듦에 따라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는 골자의 글이나 호소문을 보아도 잠시 안타까워할 뿐,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인류의 삶 기저를 곤충이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크게 와 닿지 않는 탓일까 생각해봐도 이미 지구는 다른 여러 현상을 통해서도 지속적으로 인류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었다. 전 세계 각지에 나타나는 쓰레기섬, 사라져가는 봄과 가을 등 많은 이상 현상을 통해서 말이다.
나희덕 시인이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분홍색과 흰색 사이에 그렇게 많은 빛깔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그랬던가. 나는 요즘 캠퍼스를 따라 서 있는 나무들을 보며 빨간색과 노란색, 초록색 사이에 무수히 많은 색들을 보고 있다. 아침저녁으로는 꽤 쌀쌀맞은 날씨지만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어찌나 포근한 날씨인지, 어제는 수업을 들으러 가다 말고 인문대학 건물 옥상으로 향하기도 했다. 깊은 하늘로 다가온 가을과 따뜻한 햇살, 살짝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은 고등학교 야자시간에 책상 앞에 앉아 꿈꾸던 대학 생활과 닮아 있었다. 누군가는 이미 늦었다고 말한다. 자연의 파괴를 막을 수 없다고. 그렇다면 늦출 수는 있다는 뜻이 아닐까. 점차 짧아지는 어느 가을, 그 풍경을 오래도록 보고 싶다고 느꼈다.
지난 몇 십년간 운전을 해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요즘은 차 앞 유리에 달라붙어 죽는 벌레가 적어 좋다”고 말한다. ‘바람막이 유리 현상(Windshield phenomenon)’이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환경의 파괴가 잘 드러난 하나의 예시라고 할 수 있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존재로 느껴지는 곤충은 가장 성공적으로 번성한 생물군이며, 지구상 모든 서식지를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식물들 간 수분의 매개체인 동시에 먹이사슬의 가장 바깥에 존재하여 모든 생물체의 개체수를 지탱하고 있다. 그러나 ‘바람막이 유리 현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곤충의 양이 줄어들고 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인류 때문이다. 여러 세대에 걸쳐 농업이 산업화되면서 살충제를 뿌린 결과이며, 지속되고 있었던 지구온난화로 기후가 급변한 결과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곤충이 줄어듦에 따라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는 골자의 글이나 호소문을 보아도 잠시 안타까워할 뿐,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인류의 삶 기저를 곤충이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크게 와 닿지 않는 탓일까 생각해봐도 이미 지구는 다른 여러 현상을 통해서도 지속적으로 인류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었다. 전 세계 각지에 나타나는 쓰레기섬, 사라져가는 봄과 가을 등 많은 이상 현상을 통해서 말이다.
나희덕 시인이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분홍색과 흰색 사이에 그렇게 많은 빛깔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그랬던가. 나는 요즘 캠퍼스를 따라 서 있는 나무들을 보며 빨간색과 노란색, 초록색 사이에 무수히 많은 색들을 보고 있다. 아침저녁으로는 꽤 쌀쌀맞은 날씨지만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어찌나 포근한 날씨인지, 어제는 수업을 들으러 가다 말고 인문대학 건물 옥상으로 향하기도 했다. 깊은 하늘로 다가온 가을과 따뜻한 햇살, 살짝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은 고등학교 야자시간에 책상 앞에 앉아 꿈꾸던 대학 생활과 닮아 있었다. 누군가는 이미 늦었다고 말한다. 자연의 파괴를 막을 수 없다고. 그렇다면 늦출 수는 있다는 뜻이 아닐까. 점차 짧아지는 어느 가을, 그 풍경을 오래도록 보고 싶다고 느꼈다.
/김예진(경상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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