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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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9.11.1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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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인제대 김성리 교수의 ‘다시 봄이 온다…’이야기(2)

동병상련으로 가족을 이루고
사별한 반쪽을 그리워 하고
한센인들의 삶 계절 속에 풀어
인제대 김성리교수가 성심원에서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한 분은 오상선 바오로 전임 신부였다. 오신부는 성심원의 전환기 시대를 위한 시설이나 문화적 환경조성에 힘을 많이 썼는데 특히 카톡을 통한 매일 말씀 나누기(알타반의 말씀사랑)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 회에서 성심원을 운영하는 주체를 재속 프란치스코회라 했는데 ‘재속’이 잘못 들어가 혼동을 일으키게 되었는데 이를 바로 잡는다. 그냥 ‘프란치스코회’라 해야 맞는 말이고 총체적으로 프란치스코회에는 1회, 2회, 3회가 지파로 나뉘어져 있다. 1회에는 작은 형제회, 꼰벤뚜알, 카푸친을 포함하고, 2회에는 글라라회(여자 관상수도회)이고 3회에는 재속 프란치스코회, 율수 수도회 등이 포함된다.

‘다시 봄이 온다, 우리들의 봄이’는 성심원 환우들의 계절감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제1부 ‘성심원의 가을, 한센인으로 살아온 길, 더듬어 보니’를 읽어 본다. 다음은 이야기의 서두이다.

“성심원에는 다른 곳보다 가을이 일찍 찾아온다. 색색으로 물든 나뭇잎과 함께 화려한 세상의 가을에 비해 성심원의 가을은 수수하다. 성심원을 지키는 아름드리 나무들도 가을이 오면 숨어 있던 성격을 드러낸다. 미처 물들이지 못한 나뭇잎을 땅에 떨구어 버리는 성급함을 나타내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찬바람이 불어와도 꿋꿋하게 버티고 서서 화려한 잎사귀를 보여주는 나무도 있다. 그 틈 사이로 여름내내 푸르렀던 나뭇잎 대신 성심원 여기저기에서는 가을 들꽃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환우끼리 가정을 이루는 사례를 든다. “한센인들끼리 부부의 연을 맺는 일은 일반인들이 하는 결혼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제세히 들여다보면 다르다. 대부분 초혼이 아니라 재혼 또는 삼혼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발병하면 강제 이혼을 당하거나 스스로 집을 나와 한센인 마을에서 지내며 서러운 삶을 서로 어루만져 주다 가정을 이룬다. 또 사별 후에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새로운 가정을 이루기도 하는데 거기에도 다른 이유가 있다. 그들은 외로운 것이다. 흔히 말하는 옆구리가 시린 그 느낌, 홀로 이 넓은 우주에 버려진 것 같아 잃어버린 반쪽이를 찾듯이 그렇게 가정을 이룬다.”

안젤라씨 이야기다. 안젤라씨는 한센인 남편을 따라 성심원에 와서 지금은 홀로 지낸다. 두 번의 결혼 실패와 고단한 삶에 지쳐 있을 때 남편을 만났다. 한센병을 앓던 남편은 오갈 데 없어 어린 아이를 데리고 다리 밑에서 지내던 안젤라 씨에게 기댈 벽을 만들어 주었다. 그 인연으로 남편과 부부의 연을 맺고 성심원으로 왔다. 아이를 낳고 살다가 아이들을 위해 안젤라씨만 아이들과 함께 밖에서 지내기도 했다. 성심원에서 혼자 지내던 남편이 시력을 잃고 건강이 나빠지자 다시 성심원의 남편 곁으로 왔다.

병든 몸이었지만 안젤라씨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던 남편을 떠나보내고 혼자 지내는 요즘에는 가끔 찾아와 이것 저것 살펴주고 먹거리를 챙겨 주는 아들을 보는 기쁨으로 지낸다. 하루 종일 거실에 앉아 TV를 보다가 배고프면 한 숟가락 떠 먹고 나와서 가정사 입구 안전대와 창틀을 닦는다. 백일홍 꽃을 보며 ‘저거는 백일홍 아이라 배롱나무 꽃이다. 진짜 백일홍은 요래 대가 쪼삣하게 올라오고 그 끝에 꽃 한 개가 달린다’라며 배롱나무꽃의 색깔이 여러 종류라는 것도 알려주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도 그 자리에 내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갑자기 이야기를 멈추고 집으로 들어가 TV를 켜기도 한다.

성심원에서 지내는 한센인들의 연령대는 높고 기억은 파편화되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발병 당시 상황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것은 한센병 발병이 그들에게는 절대 치유될 수 없는 상흔이며 깊고 깊다는 의미이다. 또 공통적인 사실은 자식들에게만은 이 병을 물려주고 싶어하지 않으며 행여나 그럴까 봐 노심초사했다는 점이다.

베르다씨는 진양군이 고향이다. 장날이면 여기저기서 끌려온 소들이 꼬리로 파리를 쫓고 매매된 소가 음메 하며 새 주인을 따라가던 장면을 기억한다. 열세살부터 발바닥과 얼굴에 결절이 생겼다. 상처가 나도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주위에서 상차났다는 말을 해줘야 비로소 상처 난 줄 알았다. 학교에서 넘어져 생긴 팔꿈치 부근에 상처가 낫지 않고 부위가 커졌지만 크게 아프다거나 쓰린 증상을 느끼지 못했다.

열네살 동짓달 매섭게 추운 날 얼어 있는 강을 걸어서 성심원으로 왔다. 1962년 초가을, ‘시집 안 간 아가씨는 나 하나였어’ 아가씨라 지칭하기에는 어린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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