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플러스[231] 대원사계곡
명산 플러스[231] 대원사계곡
  • 최창민
  • 승인 2019.11.1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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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자연은 다시 깊은 침묵에 들려 한다. 입동(立冬)이 지나면서 초목(草木)은 지난날 화려했던 녹색의 잔치를 끝내고 시들거나 이파리를 떨군다. 다음 생을 위해 스스로 에너지소비를 줄이는 초목들의 자구책…, 사람들은 그러한 자연의 이치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인생의 순리를 관조한다.

세상이 좁다고 지리산을 탈출했던 반달가슴곰도 이제는 인적 끊어진 어느 한 모롱이를 돌아 어두운 바위굴을 찾거나 늙은 나무구멍으로 기어들어 자연과 한 몸이 된다. 그 뿐이랴, 개구리와 구렁이는 벌써 동면에 들었고 다람쥐는 밤 한 톨, 도토리 한 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이리 저리 해찰거린다. 오렌지 빛 단성감, 붉은 가랑잎, 그 가지와 잎을 흔드는 소슬바람, 옷깃을 여미게 하는 늦가을과 초겨울의 이 즈음, 냇물은 느리게 흐르고 산야는 붉으며 하늘은 푸르다.

지난 여름 많은 사람들로 붐볐던 지리산 최고인기의 대원사계곡을 찾았다. 너무 작아 나뭇가지에 걸려 있어야만 될 것 같은 가랑잎 초등학교의 옛 영화를 돌이켜 볼 수 있고, 비구니 도량 대원사를 둘러볼 수도 있다. 또 하나, 요즘 이곳에는 국내에서 가장 맛있기로 소문난 유평사과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맹세이골 흙담 초가와 숯가마터에서 느끼는 쓸쓸함과 고독…, 고독마저도 아름다움으로 승화가 되는 트레킹 길이다.

▲트레킹로; 대원사 버스정류장 유평주차장→소막골 철다리→데크로→맹세이골(반환)→대원교→방장산 대원사 일주문→휴림→방장산교→용소→용수동→한판골·새재갈림길→큰바위 펜션갈림길(반환)→가랑잎 초등학교. 왕복 7㎞, 3시간 소요.

▲대원사 버스 종점, 유평주차장에서 출발한다. 넓은 주차장에서 계곡쪽으로 다가가 모롱이를 돌아 내려서면 오른쪽 가장자리로 트레킹 길이 열려있다.

여름철 야영객들에게 인기를 독차지한 소막골야영장이 계곡 맞은편에 보인다. 철다리 옆 데크로를 따른다.

굽이치는 계곡은 마치 뱀의 움직임 같은 동선을 보여준다. 데크로를 걷는 것은 계곡의 울퉁불퉁한 바위 위를 걷는 것보다 불편함이 확실히 덜하다. 20여분이 채 안 돼 맹세이골 입구에 올라선다.

맹세이골의 ‘맹’은 한자 맹수(猛獸)를 의미한다. 이골에 호랑이가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

지리산 국립공원은 오래 전 이곳에다 자연과 함께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생활양식을 살펴보고 자연생태계를 체험할 수 있도록 이른바 ‘맹세이골 관찰로’를 조성했다. 관찰로 거리는 1.8㎞이며 왕복 50분정도 걸린다.

맹세이골로 가려면 트레킹 길을 벗어나 산 위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숯을 굽던 장소, 집터, 마을의 사랑방이었던 주막 터, 스님들의 마지막 이승 길, 다비장터 흔적이 남아 있다.

흙담에 작은 초가집도 보인다. 당시 이 작은 집에 13명에 달하는 대 가족이 살았다고 한다. 이들은 주로 산나물, 약초 등을 채취해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맹세이골을 되돌아 나와 대원교를 건넌다. 오른쪽 계곡 가운데 섬처럼 생긴 터에 숱한 홍수를 견디며 모질게 살아온 소나무 참나무 몇 그루가 자라고 있다. 언제나 이 대원교를 지날 때 볼수 있는 정겨운 광경이다.

도로를 가로질러 언덕에 올라서면 큰길 먼 곳에 방장산 대원사 일주문이 보이고 트레킹은 오른쪽 숲과 계곡 사이 길로 이어진다. 군데군데 푸른 소와 담이 청량감을 안겨준다. 계곡 옆에는 소나무를 비롯한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너와지붕의 재료가 되는 굴참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 일대는 마음을 아리게 하는 사건이 하나 잠들어 있다. IMF시련이 한창이던 1998년 여름, 이곳에는 또 다른 시련이 닥쳤다. 지리산 일대에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집채만 한 물 폭탄이 계곡을 덮쳤고, 당시 야영 중이던 피서객 수십명이 떠내려가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천둥 번개와 돌풍을 동반한 집중호우는 이 일대를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말았다.

이 사고로 지리산에서만 78명이 사망했고 전체적으로는 324명이 실종, 사망했으며 1조 2500억 원에 달하는 재산피해가 났다. 이같은 사망자수는 6.25전쟁 이후 처음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남겼다. 당시 사고 현장에 달려갔던 기자는 누군가가 건져놓은 텐트 안을 살피던 중 미처 수습하지 못한 어린이의 시신을 발견해 눈시울을 붉힌 적이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비구니 도량 대원사와 숲속 휴식처이자 휴게 음식점 휴림이 나온다. 대원사는 1948년 여순사건 때 소실돼 방치된 것을 1955년 중창한 뒤 비구니 선원으로 거듭났다. 울주 석남사(石南寺), 예산 견성암(見性庵)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참선 도량으로 꼽힌다. 주로 삼층석탑이 많지만 대원사에는 키가 훌쩍 큰 다층석탑이 보물 제 1112호로 지정돼 있다.

계곡 옆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음식점 휴림이 있다. 아늑하고 조용한 식당으로 흑임자죽이 맛난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철교를 건너 테크길을 따른다.

100년 동안 용이 살았다는 전설을 품은 용소는 푸른 물감을 담아 놓은 항아리처럼 보인다. 자연이 빚은 대원사계곡의 가장 큰 돌개구멍이다.

계곡 건너편에 옛 가랑잎 초등학교건물이 보인다. 가랑잎 학교이름은 이 곳에 취재를 왔던 어느 기자가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매년 가을이면 학생들은 운동장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낙엽을 치우느라 바빴다고 한다. 아이들의 정서와 잘 어울리는 학교 이름이다.

1994년 삼장초등학교와 통폐합되면서 폐교됐다가 2003년 산청유평학생야영수련원으로 바뀌어 운영 중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도시로 도시로 향하고 저 출산까지 겹치면서 이곳에도 아이들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이름만으로도 좋아라/지리산 중턱의 가랑잎 초등학교/더덕 순같이 순한 아이 셋과 선생님 한분이/달디단 외로움을 나누며 고운 삶의 결을 가슴에 새기고 있어라/새소리 숲에 앉아 글 읽는 맑은 음성이 고요히 퍼지는 곳/사랑과 평화 그 순결함으로 충만하여라/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영혼의 파문 일으키고 꽃잎 피고 지는 것으로 계절의 흐름을 가늠하는 그냥 사는 것이 공부가 되는 교실 밖 교실/정세기·가랑잎초등학교

지은이 정세기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해님이 누고 간 똥’ 이라는 시집을 탈고한 시인이다.

곧이어 나타나는 유평사과 농장. 붉은 사과가 늦가을까지 익어가고 있다. 산청군 삼장면 유평마을사과는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해 지리산 꿀사과로 불리기도 한다. 맛있기로 소문이 나면서 따로 홍보가 필요 없는 명품이다.

트레킹길은 다시 다리를 건너 본 도로가 있는 용수동으로 합류한다. 유평마을 회관까지 진행하면 왼쪽으로 한판골을 따라 지리산 천왕봉 오르는 길과 새재로 직진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새재까지는 차량통행이 별로 없는 조용한 길이다. 계곡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어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어낼수도 있다.

이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하늘아래 첫 동네라는 새재가 나온다. 이곳을 통해서도 천왕봉으로 갈수가 있다. 중간에 공기가 좋아 재채기를 하지 않는다는 무재치폭포, 취나물이 많다는 치밭목, 중봉이 있다. 취재팀은 새재로 향하던 중 큰바위 펜션부근에서 반환했다. 하산 길은 짹짹거리는 물까마귀가 인도했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대원사계곡답사로
대원사계곡 답사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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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가랑잎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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