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수필가)
꿈이란 현실과 거리가 있기 때문에 꿈이 되는 건 아닐까? 현실과 거리가 있으므로 해서 꿈이 될 수 있는 것이며, 현실과 거리가 멀수록 아름다운 꿈이 된다. 물론 현실은 꿈만큼 아름다울 수야 없겠지만, “살다보니 이런 게 아니었는데,”그리워하며 꿈꾸며 마지않던 삶이란 결단코 이런 게 아니었을지라도 꿈을 가진다는 건 여유이자 멋스러운 지혜이기도 하다.
좋은 꿈이 탄생되자면 현실을 아름답게 살아야 함을 누가 모르랴. 원했고 바랐던 바가 아닌, 불행한 삶을 살지라도 찬란한 꿈을 꿀 수 있는 그러한 꿈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러한 꿈을 꾸면서 현실을 극복하는 힘을 얻어서 힘든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자. 뭔가 허망스럽고 뭔가 모를 우울과 비애를 느끼게 될지라도 무엇이나 극도에 이르면 차라리 무감각해지고 마침내 그 무감감이 쾌감이 된다는 걸 믿자.
진실로 고독한 사람은 고독을 즐기며 고독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아니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아픔도 극복해내는 최선의 방법이야 말로 그 아픔이 극에 다다른 나머지 오히려 그것을 즐기며 사랑하는데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나 힘들고 고통스러울수록 좋아하고 사랑해 버리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불평과 불만이 많다는 것은 그것을 사랑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지 못한 탓일 수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불행한 이들이 참으로 많은데도 불행스럽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아마도 그들은 달관에 이렀기 때문이다. 살 만하다는 이들조차 이맘때가 되면 왠지 모를 우울과 비애를 느낀다하지 않는가. 가을이라 그런지 몰라도 무엇을 위해 꿈꾸고 탐하며 즐기려는 것조차 잊은 채 절박한 상황을 체험함으로써 그 무엇이 태어나 주기를 바라는 건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갈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이 우리에게 우울과 비애를 느끼게 할지라도 이제는 인사를 하자, 불행과 아픔을 사랑하는 경지로 이룰 수 없다면 바로 지금이야 말로 이별을 고할 때다. 이별은 곧 새로운 만남의 뜻이며 마지막은 언제나 시작을 위한 희생이 아닌가. 기쁨이야말로 슬픔에서 태어나고 가을이 저물어야 반드시 겨울이 열리듯 이별 없는 만남과 끝이 없는 시작이 어디 있으랴.
좋은 꿈이 탄생되자면 현실을 아름답게 살아야 함을 누가 모르랴. 원했고 바랐던 바가 아닌, 불행한 삶을 살지라도 찬란한 꿈을 꿀 수 있는 그러한 꿈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러한 꿈을 꾸면서 현실을 극복하는 힘을 얻어서 힘든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자. 뭔가 허망스럽고 뭔가 모를 우울과 비애를 느끼게 될지라도 무엇이나 극도에 이르면 차라리 무감각해지고 마침내 그 무감감이 쾌감이 된다는 걸 믿자.
진실로 고독한 사람은 고독을 즐기며 고독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아니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아픔도 극복해내는 최선의 방법이야 말로 그 아픔이 극에 다다른 나머지 오히려 그것을 즐기며 사랑하는데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나 힘들고 고통스러울수록 좋아하고 사랑해 버리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불평과 불만이 많다는 것은 그것을 사랑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지 못한 탓일 수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불행한 이들이 참으로 많은데도 불행스럽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아마도 그들은 달관에 이렀기 때문이다. 살 만하다는 이들조차 이맘때가 되면 왠지 모를 우울과 비애를 느낀다하지 않는가. 가을이라 그런지 몰라도 무엇을 위해 꿈꾸고 탐하며 즐기려는 것조차 잊은 채 절박한 상황을 체험함으로써 그 무엇이 태어나 주기를 바라는 건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갈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이 우리에게 우울과 비애를 느끼게 할지라도 이제는 인사를 하자, 불행과 아픔을 사랑하는 경지로 이룰 수 없다면 바로 지금이야 말로 이별을 고할 때다. 이별은 곧 새로운 만남의 뜻이며 마지막은 언제나 시작을 위한 희생이 아닌가. 기쁨이야말로 슬픔에서 태어나고 가을이 저물어야 반드시 겨울이 열리듯 이별 없는 만남과 끝이 없는 시작이 어디 있으랴.
/이석기(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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