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반수
과반수
  • 경남일보
  • 승인 2019.11.1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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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술(국립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
레밍(Lemming)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서식하는 들쥐의 일종이다. 레밍들은 대열에서 이탈하면 고양이의 먹이가 되기 때문에 무리의 방향에 무조건 편승해서 움직인다. 심지어 절벽이 나와 맨 앞의 들쥐가 벼랑으로 떨어져도 방향을 틀지 않고 줄줄이 떨어져 죽는다. 이렇게 레밍은 맹목적으로 우두머리를 따르는 습성이 있어 인간군상의 모순을 비판하거나 비난할 때 등장시키는 동물이기도 하다. 양(羊) 또한 무리 지어 우두머리를 무조건 따르고 반드시 갔던 길로 되돌아가는 경향이 있는데 심지어 우두머리가 절벽으로 뛰어들어도 따라 뛰어든다. 이것을 혹자는 어리석다고 혹평하고 혹자는 양의 시력이 좋지 않아서 앞만 보고 가기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어쨌든 레밍과 양의 공통점은 우두머리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들의 의사결정 구조는 우두머리를 무조건 따르는 일종의 만장일치 체제로서 아주 단순해 보인다. 그러다 보니 본인들의 생존 여부와 생활의 정도는 오로지 우두머리가 누구냐에 달려 있다.

그러면 만물의 영장으로 불리는 사람은 어떤가. 만약 어떤 조직이 ‘힘 센 사람 잘 모시는 이’를 필요로 한다고 하자. 그래서 모질거나 영악한 자가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면 조약돌처럼 매끌매끌하게 다듬어져 있는 비굴자만이 남아 있게 된다. 만약 누군가가 이러한 분위기에 순응하지 않을 때에는 괴롭힘을 당하기 십상이고 심지어 생존권까지 위협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직일수록 양아치와 같은 보스와 비굴자만 존재하게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자들은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이들은 조직의 의사결정을 할 때 다수결, 특히 과반수에 따라 합리적으로 결정한다는 논리를 앞세운다. 그렇지만 사실 민주주의는 탄생 때부터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진지한 반대자들이 있어 왔다. 지혜로운 사람보다는 어리석은 사람이 더 많고 선한 사람보다는 영악한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반수에 의한 결정이 모두 민주적이라거나 정답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게다가 회색이나 카멜레온의 성향을 가진 구성원이 많은 조직이라면 과반수를 앞세운 다수의 횡포는 오히려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습성에 젖어 있는 무리들은 대체로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구태는 자꾸 반복된다, 심지어 어떤 이는 이러한 심리를 악용하여 늑대무리의 우두머리처럼 뒤에서 조정하는 걸 능력이라고 치부하는 과오도 범한다.

조직의 화합을 우선시한다면 과반수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져선 안 된다. 단순한 과반의 의사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그 의미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에 다수결의 기준으로 과반수뿐만 아니라 ‘2/3 가중요건’도 정하고 있지 않은가. 크고 작은 조직에서 어느 쪽의 주장도 딱 정해진 정답이 아니라면 아니 정답이 있을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나만이, 우리 편만이 옳다는 주장은 오만에 사로잡힌 독선일 뿐이다. 틀릴 리 없다고 착각하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도 생각해 보자. 그리고 잠시 멈추어 과반수의 횡포가 레밍이나 양과 같은 일방적인 의사결정 구조와 같은 결과를 초래할 땐 더 참담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한 번 돌아보자.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설득하고 포용해 나가는 화합의 분위기가 우선시 되는 조직이 많으면 좋겠다.
 
/윤창술(국립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
 
사진(경남과기대 윤창술)
윤창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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