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00]덕산계곡 생태탐방로와 논개사당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00]덕산계곡 생태탐방로와 논개사당
  • 경남일보
  • 승인 2019.11.1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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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따라 내려오는 생태탐방로

진주의 걷기 좋은 길과 진주의 숨은 비경길을 찾아다니면서 진주시민으로서 진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움과 함께 건강 증진을 위해 매주 목요일마다 걷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진주에나길 걷기회원들이다. 지금까지 1년에 두 차례 각 10회로 나누어서 ‘천 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진주성 둘레길’, ‘가좌산 둘레길’, ‘선학산 둘레길’, ‘벽화거리와 망진산 봉수대 탐방’, ‘남가람 둘레길’, ‘충무공동 김시민둘레길’, ‘금산 금호지 둘레길’, ‘진양호 육지 속의 섬 까꼬실’ 등 진주의 숨은 비경길을 장일영 문화관광해설사의 스토리텔링과 함께 걸었다. 진주에나길 걷기회원(지도강사 이준기)과 함께 전북 장수에 있는 장안산 덕산계곡 생태탐방로 트레킹과 논개사당을 탐방하기로 했다.

덕산계곡 생태탐방로는 덕산제 제방 밑 장안산군립공원 관리사무소-윗용소-아랫용소-방화폭포-자연휴양림-가족휴가촌-자연휴양림매표소까지 4.5㎞ 계곡을 따라 조성해 놓은 둘레길이다. 특히 여름철 성수기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탐방객이 많다. 산이 계곡을 만들고, 계곡은 물길을 내고, 그 물길이 다시 사람에겐 길이 된다. 덕산제 둑 아래서 계곡 물길을 따라 조성해 놓은 덕산계곡 생태탐방로는 내리막길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보니 함께 한 탐방객들의 얼굴에는 출발부터 종점까지 행복한 웃음을 가득 머금고 있다. 한창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 숲길과 기암괴석을 바라보는 눈은 호강을 누리기에 바쁘고, 계곡물 소리를 들으면서 힐링하는 귀는 자연이 건네는 말과 소통을 하느라 분주했다. 계곡과 숲, 기암괴석과 물소리가 어우러진 탐방로는 그 자태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영화 남부군의 촬영지 아랫용소와 자연휴양림

숲길과 계곡길을 조금 걸어가자 웅덩이처럼 파여 있는 윗용소가 나왔다. 웅덩이 옆 너럭바위엔 조선시대 명재상인 황희 정승이 바둑을 뒀다고 하는 바둑판이 새겨져 있었다. 정승도 와서 쉬어갈 만큼 풍경이 아름다운 덕산계곡이다. 300m정도 나무데크길을 따라 내려가자 암반에 움푹 파인 아랫용소가 있었다. 아랫용소는 영화 ‘남부군’을 촬영했을 만큼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계곡과 가파른 산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덕산계곡이 펼쳐 놓은 풍경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 아랫용소 주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맑은 물과 계곡에 놓인 징검다리,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을 바라보며 걷는 것만으로도 탐방객들의 얼굴에는 행복으로 가득했다.

자연휴양림에 닿자 높이 110m나 되는 인공폭포인 방화폭포가 먼저 탐방객들을 반겼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성수기에만 물을 내려준다고 한다. 떨어지는 폭포수를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잘 조성된 자연휴양림과 가족휴가촌을 지나 생태탐방로의 종점인 휴양림매표소에서 대기해 있는 버스를 타고 논개사당으로 향했다.

 
 
◇논개부인의 거룩한 정신을 기리는 의암사

버스를 타고 20분 남짓 이동하자 논개사당에 도착했다. 비탈진 산 전체가 논개부인의 거룩한 뜻을 기리기 위해 성역화 해놓은 논개사당이다. 사당 앞에는 논개부인의 호를 딴 의암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논개사당은 두 곳에 있다. 논개부인이 태어난 곳인 장수에 의암사가 있고, 순국한 곳인 진주성 촉석루 옆에 의기사가 있다. 논개사당 입구에는 힘차게 쓴 글씨체로 의암사(義巖祠)라고 새겨 놓은 표지석과 함께 시인 변영로가 쓴 시 ‘논개’를 새긴 시비가 서 있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사당 초입 숭앙문을 지나자 오른켠에 비각 하나가 서 있었다. 비각 안에는 논개비가 당당하게 서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훼손될 뻔했던 논개비는 장수 사람들의 기지로 지금까지 보존되어 왔으며, 군데군데 흠집이 나 있는 비에는 논개가 장수태생임을 밝히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기념관을 둘러본 뒤, 논개부인의 영정을 모셔놓은 의암사에 가서 부인의 거룩한 뜻을 기리는 묵념을 올렸다. 논개부인 영정은 한때 친일 화가인 이당 김은호가 그린 영정을 걸어놓았는데, 지금은 친일화가의 그림을 떼어내고 유여환 화백이 그린 영정을 의기사와 의암사에 모셔두고 있다. 의암사에서 내려다니 의암공원과 호수, 장수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말 멋진 곳에 논개부인을 모셔놓고 해마다 논개 탄신일인 음력 9월 3일에 논개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진주의 자랑이면서 장수의 자랑인 논개부인은 역사의 어둠 속에 묻힐 뻔했다. 부인의 성은 주씨이고, 장수군 장계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주달문)가 마을 훈장인 양반가의 딸이다. 5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숙부의 손에서 자라게 된다.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숙부가 어린 논개를 이웃마을 부자인 김풍헌에게 민며느리로 팔아넘기고 도망을 갔다. 이 사실을 안 논개 어머니가 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피신하자 김풍헌이 논개 모녀를 관아에 고소를 했다.

이때 재판을 맡은 사람이 장수 현감인 최경회였다. 최경회는 논개모녀의 딱한 사정을 듣고 무죄 방면하고 갈 곳 없는 모녀에게 관아에서 잔심부름을 하게 했다. 논개 나이 17세때 최경회와 부부의 예를 올린 뒤,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된 최경회를 따라 진주에 온다. 1차 진주대첩에서 대승을 거뒀던 조선의 의병과 관군은 2차 진주대첩에서는 10만 왜군과 7일간이나 맞서 싸웠으나 결국 패하고 만다. 최경회는 남강에 투신 자결을 하고, 논개는 남편의 복수와 나라에 충절을 다하기 위해 관기로 변장해 왜군 승전연회장에 들어가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끌어안고 의암 바위에서 남강으로 투신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논개는 천한 기생 신분이라며 순국에 대한 포상을 받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진주시민들은 해마다 제사를 지내주었다고 한다. 1739년(영조 16)에 경상우병사 남덕하의 노력으로 촉석루 옆에 의기사(義妓祠)가 세워지고, 매년 나라의 지원을 받아 논개 추모제가 성대히 치러졌다. 비록 늦었지만 나라로부터 공식적인 포상을 받았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덕산계곡의 생태탐방로와 함께 논개부인을 기리는 논개사당을 탐방한 시간은 진주시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게 한 하루였다. 진주와 장수, 두 지역이 다른 곳보다 더 아름다운 이유는 논개 부인과의 인연이 닿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박종현 시인, 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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