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말 엿보기[17] 핫바지 핫퉁이 바지저고리 숫눈
토박이말 엿보기[17] 핫바지 핫퉁이 바지저고리 숫눈
  • 경남일보
  • 승인 2019.11.20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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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눈 도둑눈 가랑눈 싸라기눈 함박눈
하루하루가 가다보면 어느새 이레가 다 지나 있어서 깜짝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철마디, 절기도 보름마다 바뀌니까 참 빨리 바뀌는 것 같습니다. 모레가 ‘소설’이라고 합니다. 한자로는 ‘작을 소’, ‘눈 설’을 쓰는데 눈이 많이 오는 ‘대설’과 견주어 볼 때 눈이 적다는 뜻이라 저희는 눈이 조금 온다고 ‘좀눈’ ‘잔눈’이라고도 합니다. 오늘은 이 무렵 날씨와 아랑곳한 토박이말을 알아볼까 합니다.

이 무렵은 음력 10월 끝자락입니다. 이쯤 되면 날씨가 많이 추워져서 바지도 홑바지를 입다가 ‘솜바지’를 입게 되지요. ‘솜바지’와 비슷한말에 ‘핫바지’가 있습니다. 이 ‘핫바지’는 ‘시골사람 또는 못 배우거나 어리석은 사람에 빗대어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솜이 들어간 따뜻한 바지’라는 본디 뜻을 모른 채 살기도 합니다. 언제부터 무슨 까닭으로 ‘핫바지’가 그런 뜻으로 바뀌었는지 똑똑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앞뒤가 잘 가려지지 않고 두루뭉술한 핫바지의 모양새 때문이 아닐까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 가지 남다른 것은 이것 말고도 우리말에 옷을 가지고 사람을 놀리는 말이 더 있다는 것입니다. 솜을 많이 넣어 지은 두툼한 옷을 ‘핫퉁이’라고 하는데 이 말도 철이 지나서도 두툼한 솜옷을 입은 사람들을 놀리는 말이라고 합니다.

‘바지저고리’는 ‘바지와 저고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인데 ‘제 생각이나 깜냥(능력)이 아주 없는 사람을 놀리는 말’이거든요. 그 까닭을 좀 더 꼼꼼하게 살펴봐야 하겠지만 이렇게 쓴 보기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는 말이 있는 걸 볼 때 근대화 또는 현대화가 되면서 우리 것을 우리 스스로 낮잡거나 얕보는 버릇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많이 배우고 잘 사는 사람들은 양복을 입고 다녔고 못 배우고 못 사는 사람들은 옛날 우리 옷을 입고 다녔다는 것을 놓고 볼 때 말입니다.

‘눈’ 이야기가 나온 김에 ‘눈’과 아랑곳한 토박이말을 몇 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그해 겨울에 처음으로 내리는 눈을 ‘첫눈’이라고 합니다. 눈이 와서 쌓인 상태 그대로의 깨끗한 눈을 ‘숫눈’이라고 합니다. 눈이 내린 뒤 아무도 밟고 지나가지 않은 눈을 말하지요. 우리가 ‘숫처녀’, ‘숫총각’ 할 때 그 ‘숫’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숫눈’처럼 눈이 내린 모양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 몇 가지 더 있습니다.

‘겨우 발자국이 날 만큼 적게 내린 눈’을 ‘자국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잠든 ‘밤사이 사람들이 모르게 내린 눈’을 ‘도둑눈’이라고 합니다. 남 몰래 무엇을 훔치는 짓을 ‘도둑질’이라고 하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도둑’이라고 하는데 몰래 내렸다고 ‘도둑눈’이라고 하니 참 멋진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이 있으니 밤새 사람들 몰래 내린 비는 ‘도둑비’라고 할 만 한데 말집인 사전에는 아직 올라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미 있는 말을 바탕으로 새로운 말을 만들어 쓰는 데 더욱 많은 사람들이 힘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가랑비’처럼 ‘조금씩 잘게 내리는 눈’을 ‘가랑눈’이라고 하며 ‘빗방울이 갑자기 찬바람을 만나 얼어 떨어지는 쌀알 같은 눈’을 ‘싸라기눈’이라고 하는데 줄여 ‘싸락눈’이라고도 합니다.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곧 그치는 눈’은 ‘소나기눈’이며, 굵고 탐스럽게 내리는 눈은 ‘함박눈’입니다. 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눈과 아랑곳한 토박이말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많을 것입니다. 오늘 다 말씀드릴 수가 없어서 다가오는 ‘대설’ 무렵 나머지 눈 이야기를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창수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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