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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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9.11.2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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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인제대 김성리 교수의 ‘다시 봄이 온다...’-3

부부도, 부모자식도 갈라놓고
투병에 지친 생사마저 갈라놓는
한센병의 가슴아픈 사연들
김교수의 성심원 한센인들 삶의 이야기를 이어서 듣는다. 대풍자유를 먹은 대부분의 한센인들은 병세를 잡지 못했다. 미카엘씨의 어머니는 의원에서 어렵게 대풍자 열매를 구해 바람 잘 드는 마루 끝에 걸어놓기도 했다. 그때마다 동네에 들어와 구걸하는 한센인들이 호시탐탐 노려 어머니의 애를 태우기도 했다.

미카엘씨는 열여섯 살 때 무릎 부위에 종기가 나서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대풍자유를 먹어도 차도가 없었고 대구 애락원으로 갔다. 그곳에서 담손을 복용하면서 증세는 조금씩 좋아졌다. 더 이상 겉으로 병세가 보이지 않아 퇴소하여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었다. 결혼도 했다. 농사일만으론 집안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공장에 다니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아들 딸이 태어났다.맘 한 구석에는 자신의 병이 늘 걸렸지만 그런 대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불행의 신은 어디에나 있었다. 병은 재발했고 손가락의 문제가 심해졌다. 남편의 병력을 알게 된 아내는 집을 나섰다. 더 이상 아내를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이혼하고 떠돌아다니다 성심원에 고단한 삶을 의탁했다. 여든 중반을 넘어서는 나이에도 자식에 대한 미안함과 걱정은 떠나지 않는다. 노령연금과 국가에서 지급되는 한센인 보상금이 유일한 수입이지만 아끼고 아껴서 아들에게 송금한다.

부부만 생이별을 하는 게 아니다. 한센병에 걸린 자식을 버리고 가야 하는 부모도 있다. 성심원이 40주년을 기념하여 펴낸 ‘예수 성심의 마을 성심원 40년사’ 160쪽에는 당시 원장인 아베르또 신부가 1967년 1월에 이탈리아 후원자들에게 후원을 요청하며 보낸 편지 내용이 담겨 있다. “지난 3개월 단 5명의 신생아들이 부대와 짚으로 싸인 채 마을 어귀에 버려졌습니다. 며칠 전에는 나병에 걸려 상처투성이인 한 소녀가 아버지 손에 이끌려 우리 마을에 왔습니다. 그 아버지는 강 어귀에 와 문지기를 부른 다음 뒤도 보지 않은 채 우는 아이를 두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엠마씨는 오래 전 자신을 식당에 버려두고 떠나간 아버지의 뒷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들 부모도 한평생 어린 자식을 가슴에 품고 살았을 게다. “나 같은 사람 세상 천지에 없어.누가 알아? 알아주는 것도 바라지 않고 그냥 죽게 냅둬. 내가 죽겠다는데 왜 이래? 죽는 것도 내 맘대로 못해?”

데레사씨는 오늘도 죽는다는 말을 달고 있다. 실제로 성심원 앞 경호강물에 뛰어드는 걸 직원들이 달려들어서 데리고 나오기도 한다. 가톨릭 신자는 자살하면 죽어서 지옥에 간다는 믿음 때문에 자살을 꺼린 적도 있었지만, 영감님 떠나고 긴 세월을 홀로 지내면서 이제는 자살만이 살 길이라는 믿음으로 지내고 있어서 직원들이 가까이 두고 한 시도 눈을 떼지 않는다.

가정사 자신의 집에서도 방에서 지내기보다는 거실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 더운 여름날에는 현관 바로 앞에까지 나와 누워 지내기도 한다.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던 한센인들은 혹시 직원이 눈치챌까 봐 살그머니 빠져나가거나 눈에 잘 띄지 않는 산으로 들어갔노라고 말해 주었다. 하지만 데레사씨는 늘 ‘죽을 끼다’라 하며 사람들 눈에 잘 뜨이는 경호강으로 간다. 데레사 씨의 자살시도는 어쩌면 ‘나는 반드시 죽겠다’가 아니라 외로워 살 수가 없으니 나좀 봐 달라는 일종의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주변에서 아들이 왔다 갔다, 딸이 뭘 사보냈다라는 말이 들려오면 외로움은 가슴에 사무치다 못해 뼈 마다마디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녹내장이 있어 화투도 칠 수 없고 심장병이 있어 성심원에서 보내주는 소풍이나 여행도 갈 수 없으니 ‘생각하는 기 죽는 것삐다’

프란치스꼬씨는 아무도 모르게 집을 떠났다. 부모님이 바다에 나가 있는 동안 배를 타고 섬을 빠져 나왔다. 대구에 있는 카톨릭병원 피부과로 갔더니 성심원을 소개해 줬다. 그는 늘 사랑을 꿈꾼다. 성심원 안에서도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이 가장 부럽다. 자살은 수도 없이 생각하고 실행도 해봤다. 반드시 죽겠다는 생각보다 순간 사는 게 무의미해서 시도하다 보니 번번 실패했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고 도움도 받고 싶지 않고 다만 사는 동안 가슴에 미지의 사랑을 품고 꿈꾸듯이 살고 싶다. 그에게는 음주에 문제가 있었다.

그의 음주는 종종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일으켰다. 깨고 나면 기억도 나지 않는 일들로 반성문 쓰고 사과도 하고 원장님 앞에 고개 숙이고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노라 맹세도 하지만 술은 여기 저기에 있었다. 시를 썼다. “장맛비는 오락가락하는데/ 술 한 잔 생각나네/내가 정한 금주기간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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