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다보탑을 줍다
[강재남의 포엠산책]다보탑을 줍다
  • 경남일보
  • 승인 2019.11.24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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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탑을 줍다(유안진)



고개 떨구고 걷다가 다보탑을 주웠다

국보 20호를 줍는 횡재를 했다

석존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

땅속에서 솟아나 찬탄했다는 다보탑을



두 발 닿은 여기가 영취산 어디인가

어깨치고 지나간 행인 중에 석존이 계셨는가

고개를 떨구면 세상은 아무 데나 불국정토 되는가



정신 차려 다시 보면 빼알간 구리동전

꺾어진 목고개로 주저앉고 싶은 때는

쓸모 있는 듯 별 쓸모없는 10원짜리

그렇게 살아 왔다는가 그렇게 살아 가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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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원 동전에 벼이삭이 있었지. 이삭 수를 세어보던 아이가 있었지. 아이는 충무공과 퇴계, 율곡에 관심이 있었을까. 그 정신을 접해본 건 그러고도 한참 후의 일이었지 아마. 세종대왕은, 그래 세종대왕. 처음부터 알던 분이었던가. 지금 이렇게 우리글을 쓰는 것은 위대한 왕 덕분입니다. 손가락이 유난히 길었던 젊은 선생님이 계셨지. 분필가루가 날려서 나는 자꾸 기침이 나는데, 용각산 한 스푼 입안에 털어 넣고 왕조를 꿰던 선생님. 그이는 역사담당이 아니었지. 나머지는 에피소드로 깊숙한 곳에 묻힌 이야기. 위인전을 읽고 난 후 돈에 들어 있는 인물만큼은 잘 정한 일이라 여겼던 기억 한 자락 꺼낸다. 시를 짓는 묘미는 평범한 사물에서 극대의 효과를 높이는 일이다. 이 때문에 많은 시인이 시를 보듬고 사는 것이리라. 십 원짜리 동전을 줍는 순간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이 눈으로 들어오고 영취산 거룩한 성지가 발끝에 머문다. 진리와 득도가 내 안에 있다는 말이겠다. 결국 깨달음은 성지의 절과 설법이 아닌 아무렇게나 만나는 혹은 어디서건 발견되는 평범함에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동전을 줍는 순간 나는 득도의 길에 들어선 부처다. 그리하여 돈이 그들과 같은 정신을 싣는 수단이어야 한다는 걸 돈에서 배울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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