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포세대가 늘고 있다고요?
[기고] 김포세대가 늘고 있다고요?
  • 경남일보
  • 승인 2019.11.27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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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규(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남지원 진주사무소장)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과 겨울 문턱을 알리는 입동(立冬)이 시작되었다. 이맘때면 늘 하는 일이 있다. 삼국시대부터 유구한 역사를 함께 한 ‘김장’이다. 우리는 예부터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기나긴 동절기를 앞두고 연례행사처럼 김장을 해왔다. 김장은 잘 삶은 수육, 갖 지은 햅쌀밥, 손으로 찢은 김장김치로 가족잔치, 이웃들 너나 할 것이 없이 한자리에 모여 몇 십, 몇 백포기씩 담가 가족 간, 이웃 간 나눔의 정신과 연대감을 증대시키는 역할을 해 온 우리 고유 문화다. 이러한 행위 자체가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아 2013년 12월 제8차 유네스코 문화유산 심사위원회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정식 명칭은 ‘김장-한국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 in the Public of Korea)이다.

그러나 김장철이 시작되었음에도 무·배추 소비가 위축돼 되레 농가의 시름은 깊어만 가고 있다. 이는 파종기부터 계속된 폭우와 태풍의 영향으로 인한 작황부진, 출하량 감소에 따른 가격 상승에 대해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가 한 몫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방송사에서는 배추가 금추라며 차라리 슈퍼에서 사먹는게 경제적이다는 멘트를 여과 없이 송출한다. 더 가관인 것은 김장 몇 포기를 하는 것과 김치를 사먹을 때의 비용을 꼼꼼하게 분석하여 방송으로 내보내며, 나 같아도 사먹겠다는 아나운서 멘트를 보면서 과연 언론이 이래도 되는지 무감각한 도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뿐인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금추에 김장을 망설인다’거나, ‘포기하는 김포 세대(김장을 포기하는 가정)가 증가하고 있다.’, ‘김장 비용 전년보다 크게 올라’, ‘그칠 줄 모르고 금추 가격 고공행진’ 등 언론마다 앞다퉈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 놓고 있다.

김장용 무·배추는 최근 가락시장에서 10Kg 상품이 8000~9000원 정도에서 거래된다. 지난해에 비해 가격이 오른 건 사실이지만 생산 물량이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 농업인의 실질 수입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또 몇 년 동안 가격 폭락으로 수확도 하지 못하고 폐기하는 사례를 되풀이 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지금에 와서 배추 한포기 가격이 3000∼4000원 하는 커피 한잔 가격에 못 미치는 현실을 두고 폭등, 금배추란 말로 여론을 호도하여선 안된다.

만약 언론 보도대로 김장을 하지 않는 세대가 계속 증가한다면 그에 따른 고추, 마늘, 생강 등 양념 채소류의 농산물 가격 하락 폭도 심화될 것이고 김장 부재료인 젓갈류를 취급하는 업소 등에도 적지 않은 어려움이 예견된다. 그 뿐이겠는가. 값싼 중국산 김치의 공급량 증가로 한국 김치의 입지도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김장이 차지하는 무형의 가치와 부가 농수산물의 수급 안정에 미치는 점을 감안하여 언론은 신중한 보도가 필요하고, 이럴 때일수록 소비자들은 우리 농업의 어려운 현실과 나눔 문화의 확산이란 점에서 힘들지만 우리 가족의 건강을 지키고 나눔 문화의 전통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내가 먹는 김장은 내손으로 한다는 혜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요컨대 김장은 김치를 만들기 위한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 이웃 간 순수한 사랑을 나누는 행사라는 점에서 ‘금추, 폭등, 일명 김포 세대 증가’라는 말보다는 범국민적 김장하기 캠페인을 통해 소비자 참여를 독려하여 무·배추의 소비촉진을 견인할 수 있는 언론 보도와 운동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성규(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남지원 진주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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