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뷰 전망대:녹동전망대, 소원동산
명소:녹동항, 소록도, 거금휴게소, 익금해변, 오천항
문의: 관광안내 061-830-5637
4월에 출발한 길이 11월에 끝이 났다. 계절이 세번 변하고, 연두빛 풍경은 진갈색으로 퇴색했다. 바다는 그저 내내 쪽빛이다.
마지막 쪽빛바다 여정은 전라남도 고흥에서 이어진다. 고흥바다를 보러 가는 길, 출발부터 딴 길로 샜다. 벌써 세번째 고흥길인데 눈에 밟히던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을 이대로 지나칠 수가 없었다. 녹동항을 향하던 노선을 잠시 벗어나 고흥분청문화박물관에 내렸다. 분청자기 전문 박물관다운 전시물과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아기자기한 영상콘텐츠가 숨어 있다. 수더분한 덤벙무늬 대접에 넋을 빼앗겼다 겨우 바닷길 노선을 찾아 탔다.
열다섯번째 마지막 바닷길은 녹동항에서 출발한다. 녹동항 신항은 통영 강구안 같은 모습이다. 바다를 길 하나 건너에 두고 장어거리 식당과 상가가 늘어서 있다. 신항 중심에는 이색적인 바다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장어거리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인근 바다정원과 VR존, 쌍충사를 모두 둘러볼 수 있다.
바다정원은 2017년에 351억을 들여 조성한 5390㎡ 면적, 지름 80m의 인공섬이다. 빙둘러 조형물과 조명시설이 있고 바닥분수와 작은 무대도 있다. 여름철 성수기에는 버스킹공연도 펼쳐진다. 바다정원에서 항구를 바라보면 바로 오른쪽으로 상가 2층을 따라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다. 미디어파사드의 일종으로 고흥 10경을 연달아 보여준다. 공연이 열릴때는 스크린으로 라이브영상을 상영한다.
옛것과 첨단이 만난 것같은 이상한 느낌은 다리입구 양쪽에 자리잡은 시설물 때문이다. 오른쪽에는 VR존이, 왼쪽에는 돔미디어관이 위치해 있다. VR존을 지키고 있는 관리인은 지난해부터 설치 운영중이라며 VR존에서는 고흥10경의 3D영상을, 돔미디어 관에서는 돔형 스크린에서 고흥 10경은 물론 우주풍경 등을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관람료는 양쪽 모두 무료다.
항구 왼쪽 끝 언덕 위에는 왜적에 맞서 싸우다 순국한 충열공 이대원과 충장공 정운을 배양한 사당 쌍충사와 현충탑이 있다. 정운은 이순신의 수하로 임진왜란에도 공을 세웠다.
이제 녹동항을 떠나 바다로 향한다. 녹동전망대에 올라 갈 길을 먼저 한번 보는 것도 좋겠다. 1962년 소록도로 들어와 한센환자들을 돌보다 떠나간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를 기념하는 나눔연수원·기념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길을 5분 가량 걸어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녹동항과 소록도, 소록대교, 섬 너머로 거금대교 주탑이 살짝 보인다. 이제 그 바다로 쪽빛여정의 마침표를 찍으러 간다.
한센인들의 애환이 갇힌 소록도가 육지와 연결된 것은 겨우 2009년의 일이다. 고흥반도와 소록도를 잇는 소록대교는 그나마 인도는 없는 다리라 차량으로만 왕래가 가능하다.
다리를 건너자 마자 오른쪽으로 꺾으면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는 소록도 구역이 나온다. 환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출입이 통제된다. 해안 데크길을 1.3㎞ 걸어가면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과 섬주민들이 조성한 중앙공원, 일제강점기 한센인들을 가두고, 실험하던 창고같은 건물들이 둘러 볼 수 있다. 소록도 자료관에는 옛 사진들과 생활상을 보여주는 물품들이 조촐하게 남아 있다. 아직 초록빛 남은 담쟁이가 엉겨붙은 붉은 막사 같은 건물에 들어서니 희뿌옇게 닳은 검시대가 놓여있어 서늘한 느낌이 든다.
중앙공원 천사비가 햇살에 반짝 빛이 났다. 비석 아래에 울퉁불퉁 새겨진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절규에 시선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천사비 뒤로 하얀 아기동백이 지고 있다. 소록도를 뒤로 하고 거금도로 향한다.
거금도는 우리나라에서 열번째로 큰 섬이다. 소록도와 사이에 2028m 길이의 연도교인 거금대교가 2011년 건설되면서 육지와 연결됐다. 소록도에서 터널을 빠져나오면 바로 거금대교로 이어진다. 거금대교는 해상교량 중 처음으로 복층교량 놓였다. 167.5m 높이의 다이아몬드 모양 주탑 두개에 금빛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고, 자전거·보행도로인 아래층 난간은 노란빛이다. 멀리서 보면 찬란한 색깔 때문에 금빛대교라고도 부른다.
거금도는 조선시대에는 절이도 라고 불렀다. 1598년 거금도 인근 해역에서 임진왜란 최초의 해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거금대교를 건너 바로 나오는 거금휴게소에는 ‘절이도 해전 승전탑’이 있다. 이곳 휴게소에서 자전거를 빌려타고 연도교를 건너갔다 올 수 있다. 거금휴게소는 또 ‘꿈을 품은 거인’으로 유명하다. 은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사람형상 뒤로 거금대교가 질새라 금빛을 낸다. 쏟아지는 금빛 은빛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고 본격 해안길로 떠난다.
금산면사무소 갈림길에서 고흥거금야구장 쪽으로 우회전하면 금새 김일기념체육관이 왼편에 나온다. ‘프로레슬링 세계챔피언 김일’이라고 새긴 돌 위에 가운차림의 김일 석상이 있다. 고흥 금산면 출신 김일 선수를 기념하는 소박한 기념관에 주민체육시설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체육관을 나와 연소해변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해변마다 소박한 방풍림이 눈에 띈다. 연소해변을 지나면 오른편으로 바다를 접한 채 오천항까지 거금일주로를 따라 ‘고흥 7경’ 금산 해안 경관이 펼쳐진다.
익금 해수욕장의 고운 모래밭과 오천몽돌밭의 공룡알 해안이 공존하는 금산해안경관길. 수평선 따라 태평양을 지척에 두고 오천항까지 달린다. 바다풍경이 절로 손짓하는 곳마다 쉬었다 가라고 갓길 주차장까지 설치돼 있다. 운전하다 한눈 팔리면 안되니, 종종 차를 세우고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쪽빛바다를 감상한다. 덕분에 짧은 코스가 더디다.
이정표의 마지막, 오천항까지 길도 안막히는데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도착하고보니 국도 27호선의 시점이다. 끝에 왔는데 다시 시작이라니. 그 바람에 기운을 내고 언덕을 하나 넘으니 곧바로 소원동산이 있다. 코스를 지나서지만 이곳 오션뷰는 추천할만 하다. 발 아래 고래를 연상시키는 섬은 인증샷을 놓치기 아깝다. 고래를 찍고, 지는 해를 잡으려 오천몽돌밭으로 얼른 돌아왔다.
거금도는 조선 중기에 거억금도(巨億金島)라고 불린데서 유래했다. 거대한 금맥이 있다는 설이다. 실제로 금광은 없다. 다만, 해질무렵의 오천에 와보면 거대한 금맥을 만날 수 있다. 금빛 파도가 쓸며 밀며 공룡알 오천몽돌을 도금질하는 시간, 거금도 금맥이 잠시 살아나는 시간이다. 이래서 거금도 인가보다 싶은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난다.
거제 학동 몽돌밭에서 거금도 오천 몽돌밭까지 둥글둥글 길을 따라 15번의 해안절경을 탐닉했다. 날씨가 궂어서 길을 잘 못 들어서 같은 코스를 몇번 다시 찾기도 했다. 쪽빛바다가 풀어놓은 보석같은 풍경을 어찌 열다섯번으로 우선순위를 매길 것인가 싶다. 왔다 간 파도가 다시 올 파도와 다른 것처럼, 매번 다른 풍광이 절경을 빚는 쪽빛바다 남해안. 한번 가보았다고 다 보았노라 말 못할 그 길을, 언제고 또 떠나는 것이 여행의 묘미가 아니겠냐며 8개월의 길잡이를 마무리 한다.
글·사진=박도준·김지원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