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88)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88)
  • 경남일보
  • 승인 2019.12.0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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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양왕용 교수가 쓴 이경순 시인의 생애-2
<청년기의 허무주의로 일관한 생애>를 쓴 양왕용 교수가 이경순 시인에 대한 글을 쓰게 된 것은 양교수가 창선중학교를 졸업하고 진주로 와서 진주고등학교를 입학한 뒤 진주시 상봉서동 이경순 시인댁에서 하숙을 하게 되었던 인연 때문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 구체적인 사실도 앞으로의 문맥에서 밝혀질 것이다.

이경순의 실질적인 처녀작 <백합화>는 다만 그의 회고기에서 언급되었을 뿐이지 그 동안 연구되거나 발굴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경남과 부산의 지역문학을 주로 연구하는 학술지 ‘지역문학’ 10집에 이순욱 박사가 발굴하여 동기시인, 파성 설창수 시인, 조진대 소설가의 공동 작품집 ‘삼인집’(1952 8 영남문학회)에 대하여 <근대 진주지역문학과 삼인집>이라는 논문을 쓰면서 소개한 바 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꼿이라오/ 조고마한 산골에 남 모르게 핀/ 한 송이 꼿이라오
남이야 알 건 말건 나만 피어있는 꼿이라오/ 조흔 세상을 바라고 혼자 피고
잇는 꼿이라요/ 나는 지금시들어진 꼿이라오/ 춤추는 나비도 아니오고 /노래하는 벌도 안이 와요/ 그러나 언제나 다시 필날이 잇는 백합꼿이라오
-‘하얀 백합화’(조선일보 1928. 10.26) 전문


지금까지 <백합화>로 알려진 실제 작품의 제목은 <하얀 백합화>이며 발표지면도 조선일보로 1928년 10월 26일자 4면에 게재되어 있다. 이 작품은 우선 표기법상으로 한글맞춤법 통일안이 제정되기 전에 발표된 것이기에 오늘날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고 띄어쓰기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전집에도 수습되어 있지 않다.

이 작품은 시적 화자 ‘나’를 꽃으로 단순히 비유하고 있는 점에서 그의 광복 이후의 작품보다 훨씬 난해하지 않다. 특히 주목할 만한 시적 세계관은 그의 무정부적 허무주의 사상이 전혀 보이지 않고 민족주의가 암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시들어진 꽃’, 그것도 춤추는 나비와 노래하는 벌도 오지 않는 꽃은 1928년 그 당시의 식민지적 상황을 상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마지막 행에서 ‘다시 필 날이 있는 백합꽃’이라는 비유는 동기 시인보다 훨씬 뒤에 창작된 이육사의 ‘꽃’을 연상시키는 상황의식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보아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또한 1928년 그 당시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보아도 크게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고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이 작품 발표를 계기로 시단 활동을 계속하였다면 그는 1930년대의 시인으로 시문학사에서의 위상이 달라졌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는 행방이 될 때까지 작품 활동을 중단한다. 그렇게 된 경위는 앞에서 인용한 동기 선생의 회고기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민족어로 자유스러운 정신상황에서 창작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민족의 자유 즉 국권의 회복이 우선이라고 본 것이다.

말하자면 독립운동의 한 방법으로 근 20년 동안 동경에서 아나키스트 운동 단체인 <흑우회>, <자유연합> 등지에서의 활동에서 무정부주의 이론을 배우고 동지들과의 공동생활을 통하여 실천한 것이다. 이때의 동기 시인의 아나키즘에로 경도된 모습은 그의 회고기 <그때 그 시절> 가운데 많은 부분(전집 PP 365-387)으로 언급되어 있다.

해방이 되자 이경순 시인은 진주로 돌아와 1946년 8월 31일 진주농림고등학교 급2급봉 교사로 부임한다. 48년 10월 1일에는 교사 7의 4급봉으로 승급하고 50년 8월 31일에는 8호봉으로 승급하며 봉급은 33.200원임이 발령 원부에 기록되어 있다. 1951년 8월 31일자로 개편된 학제에 따라 오늘날 진주남중학교로 개칭되어 있는 진조농림 하급학년인 진주농림중학교로 전근된다. 그러다가 1952년 4월 30일에는 마산동중학교 교사로 전근되어 진주를 떠나게 된다.

이상이 진주농림고등학교에 남아 있는 발령원부의 기록이다.

지금까지 마산동중학교로 전근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마산동중학교 교사발령원부에 의하면 1952년 4월 30일에 부임한 그는 그해 5월 24일 의원면직으로 교사직을 스스로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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