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전쟁과 천년의 교훈
백년 전쟁과 천년의 교훈
  • 경남일보
  • 승인 2019.12.08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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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진주교대 교수)
최근에 다큐멘터리 ‘백년 전쟁’이 오랜 법정 투쟁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2012년 11월에 유튜브로 처음으로 공개된 이래 400만 뷰 이상을 기록했다. 전직 대통령인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비판이 주된 내용이다. 이것의 내용이 법원이 방송의 공정성이 있네, 없네를 두고, 역사적인 진실이냐, 아니냐를 두고 쟁점으로 삼아오다가 대법원에서 법적인 문제 없음으로 결론을 맺었다. 시작에서 끝까지 꼭 7년이 걸린 일이다.

그런데 나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지 않았지만 많은 신문들이 내용을 소개해 알고 있거니와, 이승만에 관해 내가 아는 내용과 왜 그리 차이가 나는지 잘 알 수 없다. 백년 전쟁은 그를 두고, 악질 친일파, A급 민족 반역자, 돌대가리, 백인 여자들을 유혹하는 플레이보이 등이라는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했다고 한다. 북한의 매체에서도 보기 힘든 저질 악평이다. 내가 아는 이승만은 청년 시절에 전제 왕권에 도전한 민주 투사로서 오랜 기간에 걸쳐 옥고를 치렀고, 1910년에서 1948년까지 무국적자, 즉 국제 난민으로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으며,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이 되자마자 공정 사회를 위한 농지 개혁을 과감히 추진함으로써 몇 년 후에 한국전쟁 때의 위기에서도 공산화를 막을 수 있었다. 그는 나라를 세웠고, 또 나라를 지켰다. 우리는 그가 세우고 지킨 나라 속에서 민주화의 길을 걸어 왔고, 또 번영을 이룩해가고 있다. 그의 정치사상이 친미주의에 있었는가 하는 점은 더 생각을 해 보야야 하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의 견고한 생각의 틀 속에는 반일과 반공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건 불 보듯이 명확하다고 하겠다. 그런 그를 가리켜 악질 친일파니 A급 민족 반역자니 하는 것이 역사의 온당한 평가인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문제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단체에게 문제를 삼고 싶지 않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무슨 사회단체든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매양 얽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태를 두고 일부 언론과 법원이 더 문제적이라고 본다.

한 진보 언론의 중진 논설위원이 쓴 칼럼을 인용해본다. “방송 4개월 만에 친일 협력 후손인 한국방송 이사장(이인호)이 사회 원로 자격으로 역시 협력 세력의 딸인 대통령(박근혜)과 만난 자리에서 ‘역사 왜곡’이라며 ‘국가 안보의 차원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부추겼다. 이틀 뒤부터는 또 다른 친일 협력 후손들이 소유한 언론들이 달려들었다.” 진보 언론은 언제나 그랬다. 부와 권력은 세습되어선 안 된다고. 정말 옳은 말이다. 인용문을 뒤집어놓고 생각해 봐라. 그런 언론이 죄의 대물림은 감수해야 한다고 강박하고 있다. 옳고 그름이나 잘잘못 이전에 논리의 모순을 최대한 지양하는 것이 언론의 미덕인데, 세상에 이런 자기모순이 어디 있나. 지금이 조선 시대처럼 무슨 연좌제의 시대인가.

법원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임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언어로 파당성을 드러낸 극한의 부도덕함에 관용의 월계관을 씌워 주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대법원마저 정치 판단의 밀물이 스며들었다. 지금의 대법원은 권력의 시녀인가? 국민의 3분의 1이 동의하면 스스로 반성의 기미를 보여야 하고, 국민의 반이 그렇다고 생각하면 사법제도는 개혁적 청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백년 전쟁은 천년의 교훈을 생각하게 한다. 사법의 정치 중립, 영원히 흔들릴 수 없는 3권분립을 위해서 말이다.
 
/송희복(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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