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의 푸름과 경(敬)
솔의 푸름과 경(敬)
  • 경남일보
  • 승인 2019.12.1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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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함안군가야문화유산담당관)
조정래 담당관
조정래 담당관

어느덧 찬바람이 몸을 움츠리게 한다. 그럴수록 운동을 해야 건강해진다고 하는데 마음만 용을 쓴다. 앙상한 가지 사이로 푸른 솔이 돋보이는 이유다.

뜻도 마찬가지다. 충절은 고난을 온몸으로 견디는 것이기에 따뜻한 여름을 두고 논할 것은 아니다.

주세붕이 자란 함안군 칠서면의 무산사에 가면 경(敬) 현판이 있는데 그 앞에 서면 겨울을 이기는 솔이 생각난다. 그 원류는 소수서원 앞 죽계의 바위에 새겨진 경(敬)이다.

단종이 즉위하자 수양대군도 보필을 약속했지만 계유정란을 일으켜 영의정이 되는데 형제들 중에서 유일하게 반발한 금성대군은 유배로 떠돌다 결국 순흥에서 탱자나무 울타리에 갇혔다.

순흥은 조선의 국가통치이념인 성리학의 기반을 닦은 안향의 고을로 고려말에는 남쪽은 순흥, 북쪽은 개경이라고 불릴 정도로 번창한 곳이었다.

그곳의 부사 이보흠은 금성대군과 함께 단종복위를 꾀하는데 관노의 고발로 실패하고 단종과 금성대군 모두 목숨을 잃게 된다.

순흥도호부는 현으로 강등되고 이름도 풍기로 바뀌었다. 30리 안의 주민이 모두 처형되면서 죽계가 핏물로 뒤덮였고 7km 아래서 피가 멈춘 곳은 피끝마을이 되었다.

선초 격변기의 살아있는 권력에 피로써 맞설 수 있었던 그들의 정신은 어디서 온 것일까. 스스로 칼날에 목을 내놓음은 예사로움이 아니다. 늘 푸름을 유지하는 것은 그만큼 고통을 안는 것이리라.

정축지변 84년 후인 1541년 주세붕이 풍기군수가 됐는데 전설에 의하면 밤마다 죽계에서 귀신 울음소리가 들리므로 바위에 붉은 글씨로 경(敬)을 새기고 제사를 올리니 울음이 그쳤다고 한다.

선생이 세운 백운동서원은 후대 군수인 이황에 의해 소수서원이 됐는데 거기서 경(敬)바위를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무산사에서 충절을 되새기는 것은 의미가 더 깊다. 더구나 함안에 있음에랴.

정축지변 때 간신히 몸을 피한 안향의 후손은 1523년 안관이 함안에 정착하면서 뿌리를 내리게 됐다. 관동별곡, 죽계별곡으로 유명한 안축의 군재집책판이 경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그 때문인데 주세붕의 경(敬)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안관이 벗을 모으던 취우정과 그를 기리는 신암서원에서 아직도 그 이름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순흥의 슬픈 충절을 느낄 수 있다. 생육신을 모신 서산서원까지 있으니 찬바람이 거세지면 함안이 제격이다.

 
/조정래(함안군가야문화유산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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