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종군위안부의 실체적 진실
일본 종군위안부의 실체적 진실
  • 경남일보
  • 승인 2019.12.1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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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위(칼럼니스트)
일본 종군위안부! 이 말은 일본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일본군 성노예(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라고 부른다.”

일본군이 성노예를 제도화 한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金雲泰). 그 첫 번째 이유는 성병환자인 군인이 전사자보다도 많아 군전력(軍戰力)을 떨어뜨렸다는 경험의 소산이었다. 일본은 1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인 1918년에 연합국의 일원으로 “시베리아출병”을 단행하였다. 이 전쟁에서 7만2천명의 출병 군인중에 3년 동안 전사 1,387명, 전상 2,066명인데 비해 전투에 참가하기 어려운 성병환자가 2,012명이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로 사례로는 1937년말 난징(南京) 침공시에 자행했던 일본군의 대학살에 이은 강간사건들이었다. 아이에서부터 비구니에 이르기까지 모든 중국인 여성들은 일본군의 능욕의 대상이 되었다. 일본군은 이러한 만행을 회피하기 위해 부대 안에 위안소를 설치하고 성노예를 사육하자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김운태교수는 소화(昭和)13년(1938년)의 일자로 된 일본 육군성 병무국 병무과의 공문 <군 위안소 종업부(從業婦)등 모집에 관한 건>이라는 문서를 발견한 적도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도화하고 위안소를 설치할 즈음인 1930년대는 우리나라 농촌이 피폐할 대로 피폐해져 농촌사람들이나 빈민들은 도시나 만주로 유랑의 길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될 형편에 있었다.

이러한 때에 일본은 경찰이나 면장등을 앞세워 위안부를 모집 하는척 하면서 때로는 강제납치와 유괴도 서슴치 않았다.

이렇게 끌려간 처녀들은 전쟁의 종결과 함께 돌아오지도 못한 채 집단 학살된 경우도 있다. 남양군도에 있는 트루크 환초(Truk環礁)에 있던 40여명의 한인 위안부들이 그들이다. 종전이 되자 일본군은 귀국시켜준다고 속여 트럭에 태우자 마자 한꺼번에 학살하였다. (한국일보 1990년 5월8일자). 자신들이 저지른 죄과가 탄로 날까 두려워서였다.

위안부 문제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미 국가 기록보존소를 평생동안 뒤적였던 재미학자 방선주(方善柱)교수는 또 일제는 “길바닥에서 논에서 빨래터에서 여성들을 강제 연행하였으나 이런 상황을 꾸준히 고발하며 성찰한 사람들도 다름 아닌 일본인이라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곧 일본인 스스로가 위안부 문제의 증인이라는 얘기다.

현 아베 정권이 짐짓 알고도 부인하고 있지만 일본 도쿄 한 복판에는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이라는 이름으로 강제 동원된 위안부 전시실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이 자료관에는 “기억의 문을 연 여성들”이라는 안내표시를 통해 10개국 위안부 피해자 155명의 얼굴사진이 한쪽 벽면에 빼꼭하게 채워져 있다고 한다. 이 자료관의 관장인 이케다 에리코(池田惠理子)는 찾아간 기자에게 “아베 신조 총리가 전시관을 한번이라도 와서 본다면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는 망언을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조선일보 2013년 6월 21일).

뿐만 아니라 1946년 7월 5일 네델란드 검찰이 극동 군사재판소에 제출한 자료나 미군이 남긴 기록물만 해도 위안부를 어떻게 잡아가고 또 위안소를 어떻게 운영했는지를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조선일보 2013년 8월 7일). 또 1948년 인도네시아 바타비아에서 열린 전범재판소의 재판기록에서도 위안부를 강제로 동원하여 성노예로 삼았다는 기록이 공표가 되었다(중앙·동아일보 2013년 6월 24일).

사정이 이러한데도 일본 종군위안부의 강제동원을 부정하려드는 일부 한국학자는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거짓된 역사를 꾸미는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다.
 
/김중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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