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홍의 경일시단] 달, 저녁-박해림
[주강홍의 경일시단] 달, 저녁-박해림
  • 경남일보
  • 승인 2019.12.1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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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저녁-박해림

엄마는 늘 불을 끄셨네
설거지를 하면서 불을 켜지 않았네
어둠 속에서 무얼 하나 몰라

그릇들이 어둠을 삼켜도 어둠은 줄어들지 않았네

엄마는 늘 불을 켜지 않았네
불이 어둠에 빠질까 걱정되었을 것이네 그리하여
딸깍, 딸깍 방이 꺼지고
딸깍, 딸깍 마루가 꺼지고
딸깍, 딸깍 부엌이 꺼졌네

붉은 창호지에 번진 엄마의 눈빛이
형광등보다 밝은 것을 그때 처음 알았네

 
엄마는 늘 불을 멀리 밀어놓으셨네
60촉 백열전구도 눈이 시려 30촉으로 바꿔놓으셨네
마침내 전구가 나갔을 때, 품속의 달을 켰네

달빛이 스러지고
엄마의 눈빛이 스러지고
마침내 발이 스러질 때
달그락, 달그락 부엌이 일어나 혼자 어둠을 켰네

아버지는 이날도 돌아오지 않으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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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을 가장한 관심은 늘 후벼 파는 가슴을 견디는 일이다,

포기하는 척하면서도 기척을 기다리는 마음은 촛불처럼 심지를 태우는 일이다.

털커덕 대문 소리 나 바람에 스치는 비닐 조각의 소리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별의별 상상과 혼돈 속에서 돌아가는 시곗바늘을 헤아리는 심정은 오죽했을까.

별빛도 돌아가고 뿌연 새벽이 찾아올 때 까지 뒤집어쓴 이불에 냉기만 촉촉 했을 터.

그런 적이 있었다,

아비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래도 어머니는 아침밥을 짓고 계셨고 새끼들은 모른 척했었다.
 
/주강홍 진주예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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