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도전] 행복한 남촌마을 ‘욜로밴드’
[행복한 도전] 행복한 남촌마을 ‘욜로밴드’
  • 백지영
  • 승인 2019.12.15 1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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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하나 되는 장애인·비장애인의 '아름다운 하모니'

마음맞는 직원들이 만나 밴드결성
현재 직원 8명·장애인 1명으로 구성
시설 이용자들에게 음악 들려 주고파
'왕초보'탓에 각자 연습으로 악기 익혀

지난 10월 어울림한마당에서 첫 공연
단원들, 첫 공연 후 성취감에 뿌듯
"목표는 실력키워 함께 연주하고 장애인 보는 인식개선에 보탬되고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 되어 열정적인 공연을 선보이는 밴드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진주시 문산읍에 위치한 사회복지법인 ‘남촌’ 산하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 ‘행복한 남촌마을’ 직원들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의 밴드 이름은 욜로(YOLO). ‘네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뜻의 영어 문장(You Only Live Once)에서 각 단어의 앞글자를 이어붙인 줄임말이다.

‘욜로’는 영미권 한 래퍼의 노래 구절에 등장해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치렀다. 한국에도 본격 상륙해 카르페디엠처럼 ‘후회 없이 이 순간을 즐기며 살자’는 뜻으로 널리 쓰인다.

욜로가 국내에서 한참 ‘뜨는’ 표현이었던 2년 전 가을, 그 뜻에 공감하며 아예 욜로라는 이름의 밴드를 만든 것이다.

“직원들끼리 같이 식사를 하던 중에 마음이 맞아 밴드를 만들게 됐어요. 저희 직장이 장애를 가진 분들이 이용하는 시설인데 이용자 중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요. 직원들이 음악을 배워 그분들에게 직접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음악을 직접 가르쳐 드리기도 하고, 같이 하길 원하는 분이 계신다면 함께 밴드 활동까지 해보고 싶었어요”

리더를 맡은 박유민(30) 씨의 설명은 간단했으나 사실 밴드 창단 과정은 절대 쉽지만은 않았다.

현재 욜로밴드 구성원은 총 9명. 당시 의기투합했던 직원 8명과 올 초 합류한 시설 이용 장애인 1명으로 구성됐다.

실제 무대에 오르는 건 스텝 2명과 감독을 제외한 6명. 이들 중 남들 앞에서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칠 정도의 경력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왕초보’ 직원들의 멘땅에 헤딩이었다. 각자 노래, 키보드, 기타, 베이스, 드럼 등 평소 막연히 관심이 있던 분야를 골랐다.

키보드를 택한 직원은 건반은 간단히 칠 줄 알았지만 다른 연주자들은 악기를 전혀 다룰 줄 모르는 상태였다. 휴일이면 학원에서 개인 강습을 받으며 악기 연주법부터 익혀야 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활동하는 밴드를 지향하지만 초보인 탓에 아직 누군가를 가르칠 여력은 되지 않았다. 대신 노래는 함께 불러볼 수 있을 것 같아 시설에 거주하는 음악을 좋아하는 이용자들에게 의사를 타진했고 뇌병변 장애를 가진 성혜진(19) 양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혜진 양은 평소 시설에서 음악 관련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즐겨 보고 트로트를 달고 살아 눈여겨본 인물이다.

새 얼굴의 참여로 구성원들 사이에는 활력이 돌았지만 개별 악기를 모두 갖추지는 못한 탓에 다 함께 연주를 맞추는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인근에 있는 경남예술교육원 ‘해봄’에서 야간에 합주 공간을 빌려줘 겨우 곡을 맞춰볼 수 있었다.

연습 장소와 악기를 찾아 기러기 신세를 연연하며 고군분투하던 욜로밴드에게 빛이 찾아든 건 올여름. 국제로타리 3590지구 새진주 로타리클럽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통으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고, 장애인의 자기발전·배움을 지원하고 싶다’는 취지에 공감하며 악기 구매비를 지원해준 것이다.

김성모(42) 사무국장은 “지역 사회 내 비장애인 중 ‘장애인이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선입견을 품은 분들이 많아 힘들었다”며 “여러 단체에 문을 두드린 끝에 지원이 겨우 성사된 터라 기쁨이 컸다. 우리를 인정해준다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고 회상했다.

이제는 빌린 악기가 아닌 욜로밴드만의 악기로 연주할 수 있게 된 상황. 곧바로 시설 내에 합주 공간을 차리고 연습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퇴근 후 집에 가는 대신 다시 연습을 해야 했지만 피곤함 대신 열정이 샘솟았다.

다만 24시간 운영되는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 특성상 낮·밤 교대 근무가 이뤄지기 때문에 모두가 근무하지 않는 시간을 골라 합주 일정을 잡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밴드 스텝들이 근무를 대신 해주겠다고 자청하고 식사까지 준비해주는 등 전폭적으로 지지해줘 연습을 이어갈 수 있었다.

오윤경(46) 감독의 채찍과 당근 아래 주 2~3회씩 열심히 연습에 나선 결과 욜로밴드는 지난 10월 31일, 결성 이후 처음으로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하는 결실을 봤다. 진주시 장애인복지시설협회 주관으로 문산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8회 어울림 한마당’이었다.

여성 보컬 혜진 양과 남성 보컬 김성용(30) 씨를 필두로 단원들은 오라버니(금잔디)를 비롯해 무조건(박상철), 새들처럼(변진섭) 등을 선곡해 무대에 올렸다.

하얀 셔츠에 검정 넥타이, 빨간 리본으로 단장하고 무대에 선 단원은 긴장 대신 열정으로 무대를 꽉 채웠다.

첫 공연을 경험한 혜진 양은 “수백 명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게 쑥스럽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안 부끄러웠다. 무대에 올라 노래 부르는 게 좋았다”고 답했다. 실제로 그는 대중에게 “박수 많이 부탁해요”라고 호응을 유도하고 춤도 추는 등 마치 무대가 체질인 것 같은 면모를 보였다.

유튜브 ‘욜로밴드’ 채널에 올라와 있는 공연 영상에서 밝게 웃으며 마이크를 위아래로 흔들며 박차를 맞추다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흥겨워 보였다.

준비해간 응원 플래카드에 인쇄된 ‘함께 해서 행복한 사람들, 행복한 남촌마을 욜로 밴드’라는 문구에 딱 맞다 싶었다.

첫 공연에 단원들의 성취감도 남달랐다. 드럼을 담당하는 김용승(27) 씨는 “평소 남 앞에 나서는 걸 잘 못 하는 성격인데 다 함께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해냈다는 느낌에 뿌듯했다”고 했다.

스텝 김은주(50) 씨는 “완성된 밴드 음악을 들었을 때 욜로밴드에 동참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첫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모습을 볼 때 정말 감동적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고 전했다.

사실 욜로밴드의 공연에는 긍정적인 기대만 있었던 건 아니다. 다들 초보인 탓에 처음에는 합주를 해도 박자가 제각각이었다. 시설 내 다른 직원들도 밴드가 잘 해낼 수 있을지 긴가민가할 정도였다.

오 감독은 “공연까지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았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 첫무대를 앞 두고 시설 내 직원들을 불러 먼저 노래를 선보였는데 그때 다들 인정해줬다”고 설명했다. “이 짧은 시간에 곡을 완성해내다니 대단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희열을 느꼈다.

욜로밴드는 첫 공연을 하고 일주일 뒤 진주시 복지박람회에서 두 번째 공연을 치러냈다. 잠시 숨을 고른 밴드는 언젠가 다시 오를 무대를 위해 연습에 구슬땀을 쏟고 있다.

다음 공연에는 ‘사랑의 배터리(홍진영)’, ‘우지마라(김양)’ 등 혜진 양이 좋아하는 트로트를 비롯해 ‘서울의 달(김건모)’과 ‘걱정 말아요, 그대(전인권)’ 등 새로운 곡으로 채워볼 예정이다.

욜로밴드의 목표는 실력을 향상해 시설 이용자들에게 악기 연주법을 가르치고 쉬운 곡부터 함께 연주하는 것이다. 다양한 곡을 연습해 지역사회 대중들에게도 공연을 널리 선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인식이 개선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이용자와 무대에 올라 즐겁게 공연을 펼치는 우리 모습을 통해 모두가 다 같은 사람이라는 걸 몸소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라는 김 사무국장의 말에 그들의 세 번째 무대가 자못 궁금해졌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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