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에게 묻다 [11] 산청시대(3)
남명에게 묻다 [11] 산청시대(3)
  • 임명진 기자
  • 승인 2019.12.17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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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다
남명의 삶은 ‘애민(愛民)’으로 귀결된다.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은 그의 삶 곳곳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남명이 죽음을 무릅쓰고 여러 차례 간곡한 상소를 올린 까닭도 백성을 위함이었다.

그런데도 임금과 권력가들은 잘못된 정치의 폐단을 바로잡는 일에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관리들은 백성들을 수탈하고, 백성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져만 갔다. 왕조의 역사에서 백성이 마침내 들고 일어나 나라가 뒤엎어지는 사례가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왕과 관리들에게 크게 실망한 남명은 ‘민암부(民巖賦)’라는 글을 지었다.

‘민암(民巖)’은 험악한 민심을 뜻한다. 중국의 오래된 문헌인 서경(書經) 소고(召誥)에 나오는 것으로 ‘백성은 미약한 것이기는 하지만 바위처럼 험하니 백성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왕조의 시대에서 임금에게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최고의 미덕이다. 임금에게는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충(忠)’이라고 여겼다.

남명은 또 한 번 목숨을 내걸고 이에 반하는 글을 썼다. 그래서 남명이 지은 ‘민암부’는 놀랍다.

김경수 한국선비문화연구원 박사는 “남명이 지은 민암부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작품으로 손꼽힌다”고 말했다.

‘민암부’는 운문(시)과 산문의 중간쯤에 속하는 문장이다. 모두 61구 421자로 구성돼 있으며 남명집 제1권에 수록돼 있다.

남명은 ‘민암부’에서 임금이 통치를 잘못하면 백성이 들고 일어나 쫓아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배(임금)’가 잘 항해할 수 있게 잔잔한 ‘물(백성)’인 백성들도 어느 순간 성난 파도가 되어 배를 전복시킬 수 있듯이, 나라의 근간은 백성이요, 그 백성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면 백성들이 저항하게 되고 나아가 나라를 엎어버릴 수 있다고 했다.

‘배는 물 때문에 가기도 하지만
물 때문에 뒤집히기도 한다네
백성이 물과 같다는 소리
옛날부터 있어 왔다네
백성들이 임금을 떠받들기도 하지만
백성들이 나라를 뒤집기도 한다네’-민암부 중


남명은 ‘민암부’를 통해 백성을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는 백성이 나라의 근간이라는 민본주의 사상을 담고 있는 것이다. 사실 민본주의 사상은 유학에서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사상이다.

하지만 왕조의 시대에서 임금을 갈아치운다는 내용을 시나 글로 통해서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목숨을 내놓고 해야만 하는 어려운 일이다.

허권수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명예교수는 “남명의 민암부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민암부나 단성현감사직소 등의 내용을 보면 자기의 안위만 생각했다면 그렇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나 많은 임금들이 예사로 보아 넘겼던가?
걸왕과 주왕이 탕과 무왕에게 망한 게 아니라
평범한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기에 망한 거라네
한나라 유방은 보잘 것 없는 백성이었고
진나라 호해는 높은 황제였다네
필부로서 만승의 천자가 되었으니
이 커다란 권한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다만 우리 백성들의 손에 달려 있으니
겁낼 것 없는 듯해도 매우 겁내야 할 존재라네’-민암부 중


남명은 굳이 왜 위험을 무릅쓰고 ‘민암부’라는 글을 남겼을까? 남명집에 수록된 ‘민암부’는 그 지은 연도가 정확히 기록돼 있지는 않다.

남명은 여러 차례에 걸쳐 간곡한 상소를 올리며 백성들을 당부했지만 권력자들은 백성들의 삶을 돌보지 않았다.

참다못한 남명은 지금까지 묵묵히 순종하는 백성들도 저항을 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나라를 뒤엎을 수도 있다는 경고를 날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경수 한국선비문화연구원 박사는 “남명은 생애 동안 위민 정치를 강력히 주장했고 민암부에서 백성이 나라의 주인으로 임금을 뒤엎을 수 있고 바로 가게 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사상적 바탕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임금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편안하게 되기도 하고
임금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위태롭게 되기도 한다네
백성들의 마음 위험하다 말하지 마소
백성들의 마음은 위험하지 않다네’-민암부 중


마지막에 가서는 정치의 모든 책임은 임금에게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민암부’의 내용과 남명이 올린 상소의 하나인 단성현감사직소의 문장과 유사한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단성현감사직소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벼슬아치는 아랫자리에서 희희덕거리며 주색을 즐기고 있으며, 높은 벼슬아치는 윗자리에서 어물거리며 오직 뇌물로 재산만 불리고 있습니다. 물고기의 배가 썩어 들어가는데도 아무도 치유하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내직에 있는 신하들은 용이 연못을 차지하고 버티듯 후원 세력을 심고 있으며, 외직에 있는 신하들은 들판에서 이리가 날뛰듯 백성을 수탈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가죽이 없어지면 털이 붙어 있을 곳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신은 이 때문에 낮에는 깊이 생각하고 길이 탄식하면서 자주 하늘을 우러러 보고, 밤에는 흐느끼며 침울해 하면서 천정을 우러러 본 지 오래 되었습니다.’-단성현감사직소 중

여기서 남명은 백성을 가죽, 탐혹스런 관리를 털에 비유했다. 가죽이 없어지면 털이 없어진다는 문장은 ‘민암부’의 배와 물과의 비유와 그 결이 맞닿아 있다고 해석 할 수 있다.

낮에는 탄식하고 밤에는 흐느꼈다는 글을 통해 남명의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남명이 목숨을 걸고 ‘민암부’라는 글을 쓴 근원에는 바로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깔려 있는 것이다.

개혁군주의 표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세종대왕과 정조대왕을 우리가 받들고 추앙하는 것은 한결같이 백성들을 사랑하고 아꼈기 때문이다.

그들의 정책과 통치이념 속에 백성들이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종대왕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한글창제로 이어졌고 정조의 이상은 실학을 꽃피우게 했다.

남명의 사상은 백성의 삶을 먼저 생각하고 있다. 그가 남긴 ‘민암부’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안승필 산청군 문화관광해설사는 “남명은 백성 위에서 지도자들이 군림하는 것이 아닌, 백성이 지금 원하는 바를 파악하고 실천하고 백성을 중심으로 인과 의를 세워 나가는 여민동락 사상에 가장 근접한 대장부”라고 평가했다.


 

남명을 알리는 사람들-조옥환 부산교통 대표

반평생 남명선생 선양사업에 열정 쏟아

부산교통은 진주에 본사를 두고 시외버스와 시내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의 조옥환(87) 대표는 남명 선생의 12대 후손이자 선생을 기리는 일에 늘 앞장서고 있다. 조 대표만큼 헌신적인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자자할 정도다.

굳이 금액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사업을 통해 번 돈을 쏟아 붓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낌이 없다. 남명 선생에 대한 연구가 여기까지 오는데 조 대표의 공이 그만큼 컸다는 말이다.

조 대표는 1970년대 당시 고려대학교 김충렬 교수를 만나면서 본격적인 남명 선생의 선양사업을 뛰어들기 시작했다.

당시 김 교수는 학계에 처음으로 남명 선생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조 대표는 그 이야기를 듣고 직접 만나게 된다. “그때 처음으로 남명 선생이 어떤 분인지를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이전에는 그저 지역에서 이름이 좀 알려진 선비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제가 생각했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국가적인 인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확 들었습니다”

‘좌퇴계, 우남명’이라고 불릴 정도로 당대 학문적 경쟁자이었고, 을묘사직소, 서리망국론 등의 상소를 올리고, 임진왜란 때는 제자들이 대거 의병장으로 나가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조 대표가 아는 그 어떤 역사적 인물에서도 남명 선생 만큼 위대한 학자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한 남명 선생을 기리는 사업이 벌써 50여 년 세월이 지났다.

지난 1983년 산청의 산천재, 덕천서원 등의 유적지가 국가문화재 지정, 1990년에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남명 선생 수록, 이후 각종 연구재단 설립, 한국선비문화연구원 건립 등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팔순이 넘는 나이지만 여전히 경영일선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남명을 기리는 일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조 대표는 “남명 선생께서는 평생을 권력을 멀리하고 백성의 삶을 살펴온 고뇌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준 분”이라면서 “경남을 대표하는 남명 선생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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