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깨우는 사람들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
  • 경남일보
  • 승인 2019.12.1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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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화(시인)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에겐 맑은 종소리가 난다. 산사의 도량 치는 소리거나 현관문 여닫는 소리 같이 조심스럽고 배려가 깊으면서 어둠을 걷어가는 따뜻한 뒷모습이 보인다. 관절병원 50병동에도 새벽을 깨우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 전 손목이 부러져 수술하고 입원을 했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아파서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토끼잠이 들어 자주 깨는 바람에 뜬눈으로 꼬박 새웠다. 낡은 침상도 몸을 뒤척일 때마다 삐걱삐걱 아픈 소리를 낸다. 벽 쪽으로 놓인 침상마다 관절 환자들인데 잠을 깨우진 않았나 생각하니 미안했다.

다섯 시쯤 시린 눈을 비비며 아예 몸을 일으킨다. 링거를 들고 복도로 나오니 언제 밤이 왔었냐는 듯 환한 일상이 흐르고 있다. 간호사님들은 팔을 부둥켜안고 오는 나를 보고 다가와 걱정스레 묻는다. 아픈 사람들은 따뜻한 말 한 마디에 볕바른 곳에 쌓인 눈처럼 통증이 줄어들고 마음은 위안을 얻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데 저쪽 복도 끝에서부터 밀대를 열심히 움직이는 분이 보인다. 이미 화장실 청소는 끝냈는지 휴지통이 말끔하다. 내가 침상에서 뒤척이고 있을 때 저 분들은 벌써부터 새벽을 깨우고 계셨구나.

그분들의 수고로 어수선한 어제가 정리되고 새로운 오늘이 열린다. 베이지색 덧옷을 입은 야쿠르트 아주머니를 발견하고 얼른 병실로 들어간다. 간밤에 삐걱대며 시끄럽게 한 것도 미안하고 신고식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사물함 위에 누가 놓아두었는지 이미 떠먹는 요플레 두 개가 보인다. “간밤에 많이 아파서 힘들었죠?” 진심으로 걱정하는 여기저기 인사말에 목울대가 울컥한다.

간혹 일찍 잠이 깨어 안개가 자욱한 새벽 풍경을 볼 때가 있다. 그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란 생각보다 아름답다거나 우울하다는 느낌에 깊이 잠기곤 했다. 한 번도 누군가가 이웃을 위해 새벽을 깨우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쓰레기를 정리하다 유리 조각에 인대를 다친 옆 병상 환자가 밥숟가락만 든 채 한 술도 뜨지 않는 내게 한 마디 던진다. “병원 식당 근무하는 저 분들 여기 새벽 다섯 시에 도착해서 식사 준비할 걸요. 아무리 집이 가깝다 해도 한 시간 전에 일어나야 출근 준비가 될 겁니다.” 나는 하마터면 새벽어둠을 걷어내는 따뜻한 배려를 놓칠 뻔했다. 아침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밤잠을 설쳐가며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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