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것도 소중히 여겨야
하찮은 것도 소중히 여겨야
  • 경남일보
  • 승인 2019.12.19 14: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정래( 함안군가야문화유산담당관)
조정래 담당관
조정래 담당관

1586년 함안군수로 부임한 정구는 지역 선비와 함께 지난 자취와 풍속을 책으로 펴내기로 한다.

발간소를 관아에 두고 이칭, 박제인, 이정, 오운 등과 여러 달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한 후 함께 붓을 잡고 10여 일만에 편집을 완료했다.

고려시대 함안의 이름을 따서 ‘함주지(咸州誌)’로 명명된 이 책을 읽어보면 하찮은 것도 소중히 여기야 함을 깨닫는다.

조선시대에는 ‘선생안’이라고 하는, 후임자가 전임자를 기록하는 문서가 있었는데 정구가 이를 찾아보니 벌레와 쥐가 갉아먹은 책이었다.

거기에 1489년부터 5년 간 역임한 강백진의 서문이 있었는데 원래 고을에 선생안이 없었고 아전들이 사사로이 기록한 것도 악당의 소행으로 잃어버렸으며 나이 80이 넘는 아전으로부터 1373년부터의 임관 기록을 겨우 얻었다고 했다.

강 군수는 이를 보고 선생안을 작성한 후 보자기로 싸고 궤짝에 보관했으며 아전의 도움으로 전하게 됐으니 야사라도 없애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런 사연으로 책이 보전돼 온 것인데 정구는 그를 통해 전임자의 근무 연한과 정사의 수완을 알게 됐다며 감격해 마지않았다.

그리고 세 사람이 걸으면 반드시 스승이 있다는 공자의 말씀을 인용하며 어진 사람을 스승으로 삼고 마음으로 반성하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함주지가 국가에서 편찬한 책보다 더 많은 항목을 담고 있고 노비의 이야기까지 빈틈없이 적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한편 함주지는 그보다 더한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야 우리나라 최초의 사찬읍지가 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구의 서책을 해인사에 맡겼는데 왜구가 설득 당해 절을 불사르지 않았다.

편집에 참여한 오운이 1600년 한성에서 숙직을 하다 정구를 만나면서 원고를 얻어 간행을 하게 됐고 그 중 한 권을 정구의 제자인 임걸에게 보낸 것이 전해졌다.

후임 군수 이휘진(1738-43)과 이덕희(1837-41)가 증보판을 찍었고 1939년에는 지역 사람 조용숙이 인쇄해 보급했다.

6·25전쟁 때는 두 달에 걸친 전화로 지역에 남는 것이 없었는데도 ‘함주지’는 전해졌다.

하나의 글이 역사로 남겨지려면 행운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찮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정신이다.

 
/조정래( 함안군가야문화유산담당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