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 폐역
삼천포 폐역
  • 경남일보
  • 승인 2019.12.2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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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화(시인·진주문협 상임이사)
이미화 이사
이미화 이사

내가 나고 자란 하향마을 가까이 진삼선 열차의 마지막이며 시작인 삼천포역이 있었다. 한때는 가마솥더위를 피하려는 사람들이 오르내리며 되들고 되나던 서울 삼천포간 협동호 특급열차가 운행되기도 했다. 철없던 어린 날과 가랑잎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던 소녀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인데 1990년에 그만 폐역이 되고 말았다.

동네에서 또래들이 서른네 명이었다. 마땅한 놀이터가 없던 우리는 한사코 철길에서만 뛰어 놀았다. 그러다 누군가 “기차 온다!”라고 소리치면 얼른 옆 풀밭으로 몸을 피하곤 했다. 어느 쪽에서 기차 바퀴 소리가 들리는지 무릎을 구부리고 선로에 귀를 바짝 붙이기도 했다. 누가 더 담력이 센지 다리 위에 놓인 선로를 걷는 내기를 했다. 침목과 침목 사이 낭떠러지를 보며 다리가 후들거려 하마터면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역사(驛舍)를 돌보던 아저씨는 이를 보다못해 우리를 불러 나무랐다. 선로 주변에 있는 붉은 색 시멘트 구조물을 가리키며 기찻길에서 죽은 아이들의 무덤이라고 겁을 주었다. 하지만 떼로 뭉쳐 놀만한 곳이 거기 밖에 없었으므로 그 말을 듣고도 몰래 기찻길로 모여들곤 했다.

그즈음의 교통수단은 마차를 타거나 먼 거리는 기차를 이용했다. 가난했던 동네 사람들은 차표를 끊지 않고 기차 뒷문으로 살짝 타곤 했다. 종착역이라 간이역보다 더 오래 머물렀고 역무원들이 주의 깊게 살피지도 않았기에 쉽게 탈 수 있었다. 아마도 동네 가까이 있는 기차역이라 그냥 타도 될 것 같은 그런 묘한 기분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 가족도 그랬다. 엄마는 해마다 여름 끝 무렵이면 포도주를 담그셨다. 장독에서 포도가 뭉근히 우러나면 한 병 가득 담아 두 정거장 너머에 있는 외가에 보내셨다. 나도 당연히 동네 사람들이 다니는 뒷길로 들어가 다시 떠나려는 기차에 미리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승무원이 차표 검사를 할 때도 걸리지 않았다. 엄마가 일러준 대로 또 뒷문으로 나왔으니.

결혼하고 다른 도시에서 살고 있던 어느 날 고향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우리들이 어울려 모여 놀던 기차역이 곧 사라진다고 했다. 전화기에서 북받친 친구의 새된 목소리가 한참 들렸다. 얼마만큼 서운한지 나도 안다.

왜 안 그렇겠는가. 우리들과 비슷한 시기에 생겨나 25년을 함께 지내온 역이었다. 드는 정은 몰라도 나는 정은 안다는데 나는 친정집에 올 때마다 내 마음을 오롯하게 키워 준 폐역 주변을 기웃거리곤 한다.

 
/이미화(시인·진주문협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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