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와 함께하는 토박이말 나들이[19] 블랙 아이스는 살얼음길
이창수와 함께하는 토박이말 나들이[19] 블랙 아이스는 살얼음길
  • 경남일보
  • 승인 2019.12.2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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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워지면 때 조심을 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돌림고뿔(독감)에 걸리지 않도록 손을 자주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추워지는 갑작추위(한파)가 찾아오면 물이 얼지 않도록 마음을 써야 하죠.

그리고 수레(차)를 모는 사람들이 무엇보다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난달에도 강원도 영월에서 이것 때문에 스무 대가 넘는 차들이 미끄러져 부서지고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는 기별을 들었는데 지난 이레끝(주말)에 또 이것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는 슬픈 기별을 들었습니다. 아주 조금 내린 비가 살짝 얼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이를 알리는 신문과 방송에서는 ‘블랙아이스’라는 말을 썼습니다. 제가 두 이레 앞에 다른 방송에서 이 말과 아랑곳한 이야기를 했는데 더 많은 신문, 방송에서 이 말을 쓰니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이렇게 신문이나 방송에서 자주 써 주니까 그 만큼 자주 보고 듣기 때문에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만큼 낯익은 말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블랙 아이스’라는 말은 본디 우리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검다’는 뜻의 영어 ‘블랙(black)’에 ‘얼음’이라는 뜻의 ‘아이스(ice)’를 더한 말입니다. 이 말을 우리말로 곧바로 뒤쳐 직역하면 ‘검은 얼음’이 될 것입니다. 다른 나라 말을 될 수 있는 대로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면 ‘블랙 아이스’를 ‘검은 얼음’으로 뒤쳐 쓰자는 말이냐고 되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다른 나라 말을 뒤쳐 쓸 수도 있겠지만 다 그렇게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과 비슷한 토박이말이 있으니 그것을 살려 쓰자는 것입니다.

‘블랙 아이스’를 흔히 ‘겨울철 비가 온 뒤 빗물이나 녹은 눈이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면서 길 위에 얇게 얼어붙은 현상’이라고 풀이하곤 합니다. 한마디로 ‘얇게 살짝 언 얼음’을 뜻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얇게 살짝 언 얼음’을 가리키는 토박이말이 바로 ‘살얼음’입니다. 말집 사전에도 2014년 5월 7일 열린 국립 국어원 말다듬기 위원회 회의에서 ‘블랙 아이스’를 ‘노면살얼음’ 또는 ‘살얼음’으로 다듬었다는 풀이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저는 신문, 방송에서 이 말을 써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얼음’이란 말은 신문, 방송 일을 하는 많은 분들도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신문, 방송 일을 하시는 분들이 앞장을 서서 써 주시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말씀을 드려도 꿈쩍도 않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 토박이말이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고 우리 삶과 자꾸 멀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범칙금을 매기고 그런 사람들을 좋지 않게 보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서 점점 교통법규를 어기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처럼 우리말이 있는데도 우리말을 쓰지 않는 사람들을 좋지 않게 보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고 하면 훨씬 좋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께서 힘과 슬기를 보태주신다면 그런 분위기를 얼른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위와 같은 것을 바탕으로 저는 ‘블랙 아이스’가 길에 살얼음이 언 것을 가리키는 말이니 ‘살얼음길’이라고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해마다 이 살얼음길 때문에 많은 분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는 기별을 듣는 것이 안타깝고 슬픕니다. 어떤 분의 말씀처럼 언제 어떤 때 살얼음길이 되기 쉬운지 그리고 그렇게 되기 쉬운 곳이 어디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미리 살얼음이 얼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수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돈도 없는 것도 아닌데 이런 일이 되풀이 되게 하는 것은 일부러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일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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