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491)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491)
  • 경남일보
  • 승인 2019.12.26 15: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41)양왕용 교수가 쓴 이경순 시인의 생애-5
양왕용은 밤에 학생복을 도둑 맞은 뒤 진주고등학교 합격자 “O표날 일단 잠옷바람으로 가서 합격자 명단을 확인했다. 그제서야 양왕용은 잠옷을 걸치고 진주고등학교 발표현장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부끄러워졌다. 당일 남해 창선에서 양왕용의 아버지는 진주시외버스 차부로 오셨다. 그때 입고 있었던 옷은 잠옷은 면하고 한 방 거처를 할 진주중학교 2학년 아명래군의 옷을 빌려입었는데 바지가 탱탱하여 걸음을 걷기가 힘들었다. 아버지가 양왕용의 옷차림을 보고는 "야야 그옷 꼴이 그 모양이냐?"하시고는 중앙시장으로 데리고 가서 부랴부랴 교복을 사주시는 것이었다.

고등학교를 입학한 후 양왕용의 아버지는 양왕용을 다른 곳에다 하숙시키는 것은 생각지도 않고 당연히 이경순 시인댁에 부탁하는 것이었다. 양왕용 역시 당연히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였다. 사랑채 길가 쪽이 아닌 안쪽 방에서 1959년 3월부터 3학년 초인 1961년 4월 말까지 이명래군과 하숙을 하였다. 그 당시 동기 시인은 경남일보 논설위원으로 집필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생활에 큰 보탬이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고정수입이라는 것이 양왕용과 이명래군의 하슥비와 길가쪽의 사랑채에 함석 가공하는 점포와 그에 딸린 셋방의 수입과 전길순 사모님의 노력 등으로 살림을 꾸려 간 것으로 기억된다. 양왕용은 동기 시인의 신문 논설이나 기타 산문 그리고 문예지의 시 원고 최종 교정에 자주 불려가서 도와 드리기도 하였다. 그 당시 동기선생 댁에는 진주의 문인들과 예술인 그리고 문인 지망생들의 출입이 빈번하였다. 영남예술제 기간에는 동기 시인으로부터 종합 프로그램을 얻어 예술제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3학년 때에는 다른 집으로 하숙을 옮겼으며 5.16 쿠테타 직후 몸이 아파 1년간 휴학한다.

진주문인들의 회고에 의하면 동기 시인은 1962년 1월부터 6개월간 그 당시로서는 열악하기 짝이 없는 진주상업고등학교 교장을 잠시 맡았다고 한다. 그러나 깨알 같은 신원진술서 쓰기 번거롭다고 그만 둔 뒤로는 작고하실 때까지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직장에는 전혀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양왕용이 1962년 3월 복학 이후에는 하숙집을 몇 군데 옮겼으나 상봉서동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간간히 동기 시인댁을 방문하였다. 특히 62년 가을 진주고 교내 백일장에 입상하여 개천예술제 백일장에도 참여하게 되면서 교내 백일장 입상 작품을 손질하여 경남일보에 발표하여 주신 분도 동기 시인이었다.

1963년 봄 진주고를 졸업하고 대구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진학하면서 방학때 남해로 가는 도중에 들리기도 하였다. 이 무렵 동기시인은 상봉서동 집을 처분하고 봉곡동 374번지로 이사를 하셔서 그곳으로 몇 번 방문하였다. 그때마다 습작 시편을 보여 드리면 경남일보에 경북사대생이라 소개하면서 발표를 주선해 주신이도 동기시인이었다. 1966년 7월 양왕용은 대학 은사인 김춘수 시인에 의하여 서울에서 문덕수 시인이 주도한 ’시문학‘지에 3회 추천 완료하여 기성 시인이 되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어 귀향길에 봉곡동 동기 시인댁을 방문하였을 때에는 정말 크게 기뻐하셨다.

창선중고교 교장을 그만 두고 귀향한 1958년부터 작고하신 1985년 5월까지의 동기 시인의 삶은 청빈을 넘어 적빈의 삶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에 그는 후배 문인들과 예술인들에 의하여 거의 강요되다시피 잠시지만 진주문인협회 회장과 한국예총진주지부장을 맡기도 하였다. 이 시절 동기 시인에게는 시가 삶의 전부요 그의 세계관 표출의 유일한 통로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이경순은 그의 전집(시)에 수습된 작품 모두를 살펴보면 140편의 시를 발표했다. 그 가운데 124편이 현대문학, 자유문학, 월간문학, 신동아, 경향신문 등 서울의 중요 문예지와 일간 신문에 발표되었다. 이를 두고 볼 때 어찌 그를 향토시인으로만 한정지을 수 있겠는가. 그는 1968년 평론가 조연현의 서문으로 제1시집 ’태양이 미끄러진 빙판‘(서울 문화당)을 발간했다. 조연현은 서문에서 그 당시로서는 드문 60대 현역시인으로 마치 20대처럼 왕성하게 시작 할동을 하고 있다고 격려한다. 그러나 서문 말미에 첫시집이 마지막 시집이 될지 모른다고 염려한다. 이런 염려는 결국 기우가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