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 뜨거운 밥그릇 지키기
낯 뜨거운 밥그릇 지키기
  • 경남일보
  • 승인 2019.12.26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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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술(국립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
사진(경남과기대 윤창술)
윤창술

21대 총선을 4개월 앞둔 20대 국회는 임기 중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따른 정권 교체 및 여야의 교체, 정당의 분열에 따른 이합집산 등 그 어느 국회보다 숱한 정치사적 진통을 겪었다. 또한 법안처리율 30.6%로 역대 최악의 식물국회라는 오명의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거대 양당은 무능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고 어느 당은 당내에서조차 좀비정당이라는 자책이 쏟아지고 있다. 극한 대치 끝에 내년 예산안을 막판에 겨우 처리했고 지난 1년간 대립해 온 선거법도 이해관계에 따라 온갖 절충안을 덧씌우는 탓에 갈피 못 잡는 누더기가 돼가고 있다.

이런 참혹한 상황 속에서도 여야 모두 총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각 당은 공천 기준을 정비하고 인재 영입에도 본격 나서는 등 소위 ‘물갈이’ 경쟁에 들어갔다. 세대교체와 함께 시대교체에 적합한 인물을 찾아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사실 물갈이론은 역대 총선을 앞두고 매번 나왔고 실제로 물갈이 폭도 컸지만 정치는 단순히 사람을 바꾼다고 달라지지 않았다. 걸핏하면 문을 닫는 국회가 지속되는 한 새로운 피가 수혈된다 하더라도 왜곡된 관행이 정상화되는 것은 어려웠던 것이다. 결국 새로운 인재도 ‘one of them’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에 절망하여 나름 괜찮은 현역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도 잇따르고 있다. “무기력에 길들여지고 절망에 익숙해졌다. 바꿔 놓을 자신이 없다. 여야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와 명분은 있겠지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국회가 정쟁에 매몰돼 민생을 외면하고 본분을 망각했다. 하나하나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각자의 방식으로 반성과 참회를 하고 4년의 임기를 끝으로 불출마함으로써 그 총체적 책임을 지고자 한다.”라는 취지의 불출마의 변은 ‘물’을 바꾼다고 정치가 바뀌지 않더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제도정치에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촛불시위까지 가져왔던 왜곡된 대의민주주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계속 미뤄졌던 선거법이 제대로 개정되어야 한다. 이를 외면한 채 단순히 청년․여성만을 외치는 모습은 총선을 앞두고 표를 구걸하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시스템의 문제이기에 단순한 물갈이가 아니라 근본인 어항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되돌아봐야 할 것이 있다. 현행 선거법은 4년 전에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주도하여 민주당과 야합한 ‘밥그릇 지키기’의 개악법이라는 사실이다.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은 누구나 똑같이 한 표씩을 행사하며, 그 표가 똑같이 한 표로 존중받는 보통선거제도다. 그러나 이 원리가 지켜지지 않았기에 헌법재판소는 농촌의 표가 도시의 3.5배로 간주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하고 이를 2대 1 이하로 줄여 나가라고 2015년에 판결했다. 또한 중앙선관위도 현행 제도로는 지나치게 많은 사표가 발생해 민의가 왜곡되고 있으므로 득표와 의석수의 격차가 줄도록 비례대표를 확대하고,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라고 권고했다. 많은 학자와 시민사회도 비슷한 취지로 비슷한 제도 개혁을 촉구해 왔다.

이 같은 시대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거대 양당은 이번에도 거대 정당 기득권 그대로의 생색내기에만 그치고 있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정치로 인해 국민까지 패자로 만들어 버리는 기득권체제하의 공동체 해악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은 ‘제대로 된’ 선거법 개정이다. 한국당이 계속 이에 반대하는 건 밥그릇 지키기에만 몰두하는 정당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민주당 또한 4년 전 개악의 공범이 됐던 오류를 이번 기회에 씻어내야 한다. 역사는 이를 모두 기록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행적 역시 다 기억할 것이다. 만약 이번 총선도 제대로 개선되지 않은 ‘무늬만 선거제 개혁’의 누더기 선거법을 바탕으로 치러진다면 단순히 물갈이를 해 본들 별 기대도 되지 않는 그 나물에 그 밥이 될 게 뻔해 보인다. 안타깝다.

 
/윤창술(국립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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