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에게 묻다 [12] 전문가 인터뷰
남명에게 묻다 [12] 전문가 인터뷰
  • 임명진 기자
  • 승인 2019.12.26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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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 선생이 살았던 시기는 조선 중엽으로 성리학의 이론적 탐구가 극단적으로 치우치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많은 이들은 성리학의 이 같은 배타적 성향이 조선 후기 근대화와 개방의 시기를 놓치게 한 원인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타 학문에 개방적이고 장점을 적극 수용하려고 한 남명의 사상이 오늘날 재조명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명은 지식은 반드시 실천이 따라야 한다는 지행합일의 삶을 스스로 실천한 인물이다. 그런 남명의 생애가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남다르다.

남명의 사후 450여 년이 지난 지금, 남명은 후대에 얼마나 기억되고 있을까.

본보가 창간 110주년을 맞아 공동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는 불과 25%의 인지도를 보이는데 그쳤다. 그의 고향이자 활동지역인 경남에서 조차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선생이 거의 100%에 가까운 인지도를 보인 것과는 차이가 컸다. 남명이 그 업적에 비해 오늘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부분은 늘 아쉬운 대목이다.

이에 남명의 학문과 사상, 그의 발자취 등을 되짚어 보고 향후 남명 사상을 어떻게 계승 발전시켜 나가고, 지역에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 지,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정리했다.


 
이상필
이상필

◇이상필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소장=“남명사상은 경남정신의 뿌리”

남명 선생은 목숨을 걸고 마음을 수양하려는 강렬한 자세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점이 아주 독특하게 느껴진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정도 하기 어려운데 그래서 선생을 바라만 보아도 주눅이 들 정도의 추상열일 같은 기상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 전해진다.

한평생 경의 사상을 강조했는데 그중 의를 경만큼 더 중시했다. 그 점이 남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경은 목숨을 걸고 수양하려는 자세가 놀랍고, 의는 경과 같이 중시해서 불의에 항거하고, 사회가 어려울 적에는 결연히 일어나려는 생각을 가졌다.

단성과 진주 민란 등이 남명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거기에 더해 형평운동, 민주항쟁에 이르기까지 경남의 굵직한 사건들이 남명과 무관치 않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남명이 남긴 민암부라는 글을 읽고서 감명 받았다.

‘조선시대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선비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민암부는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고, 왕이 잘못하면 백성은 왕을 엎을 수 있다는 민본주의 사상을 강조했다. 개인적으로 처음 쓴 논문이 바로 민암부를 주제로 썼다.

남명은 유학자인데도 다른 학문의 장점을 널리 수용하고 받아들이려고 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자기의 주장만 옳다고 주장하면 갈등과 마찰을 야기한다. 오늘날 같은 다문화, 다원화된 사회에서 남명사상의 포용성과 개방성이 빛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남명선생은 퇴계나 율곡에 비해 가려진 감이 있다. 역사에서는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에 따라 후대의 평가가 달라진다. 오늘날 남명의 재평가는 그래서 반갑다. 남명사상은 경남만의 사상가나 학자, 교육자로 높이 받들어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학자로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남명학연구소가 남명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다. 개인의 관심은 갈수록 늘고 있는데 반해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보다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하겠다.



 
허권수교수
허권수교수


◇허권수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명예교수=“지행합일의 삶 실천한 강직한 선비”

남명 선생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그동안 미진한 부분이 많았다. 남명 선생의 사후 제자들이 인조반정으로 정치적으로 완전히 몰락하면서 경남을 기반으로 한 남명의 사상도 학문적으로 붕괴되고 만다.

선생은 한평생 실천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자기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는 소홀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남명은 그렇지 않았다. 자기를 희생하고 모든 좋은 것은 백성에게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간혹 선비가 나라를 망쳤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 데 이는 잘못됐다. 임진왜란 때 의병한 사람도 선비였고, 일제 때 독립운동한 사람들도 역시 선비였다.

남명은 그런 강직하고 올곧은 선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선생이 살았던 시대의 유학은 유교경전에 주석을 많이 달고, 내용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 형이상학적, 추상적으로 변질이 되고 만다.

선비들이 거기에 매몰되다 실천이 소홀해졌다. 남명은 바로 이 부분을 경계했다. 유학이 지나치게 이론 중심의 독서와 토론위주로 흘러가다 보니 실천이 등한시 되자 선생은 이를 비판했다.

실천이 안 따라가는 이론만 수양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학문의 경향을 바꾸라는 일종의 충고인 셈이다.

우리가 부모에 효도, 나라에 충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지만 실제로 하는 것과 말로 지키는 것은 다르다. 실천이 없으면 유교도 그 가치가 없다. 남명은 이 점을 정확히 꿰뚫어 본 것이다.

선비 중에서도 썩은 선비가 있고 엉터리 선비가 있고, 융통성 없는 선비가 있는데, 남명은 평생을 강직한 선비의 기상을 실천한 인물이다.

일본이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하고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켰는데 아직도 이런 영향으로 우리 스스로 깔보고 무시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남명 선생처럼 자기 안위를 생각치 않고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목숨을 내건 선비들도 있다. 개인적으로 남명 사상이야 말로 경남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한평생 마음의 수양을 실천한 남명의 사상을 우리들이 재조명하고 받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김경수박사


◇김경수 한국선비문화연구원 박사=“남명학 연구, 국가적 관심과 지원 절실”

남명학의 계승과 선양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몇 가지를 언급하고 싶다.

첫째는 지금까지 거의 남명선생의 후손 한 사람에 의해 일궈온 이 사업이 최근들어 비로소 국가적 차원의 지원을 받게 돼 그 전망이 밝아졌다. 경남도와 산청군의 지원이 큰 힘이 되고 있다.

몇 년 전 한국선비문화연구원을 국비로 건립해 남명학진흥재단에 위탁 운영하면서 그 사업비 중 일부를 국비와 도비, 군비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한국선비문화연구원을 도립기관이나 도 출자출연기관으로 전환해 체계적인 운영을 도모할 필요성이 있다.

둘째는 그동안 경남도에서 남명학 연구기관들에게 매년 일정한 정도의 지원금을 주어 특정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2019년부터 한국선비문화연구원에서 수행하고 있는 5년 계획의 ‘남명집정본화사업’을 지원하고 있는 것은 커다란 발전이다.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남명학연구에 획기적인 성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당초 예정과 달리 그 지원 금액이 부족해 사업기간이 길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사업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

셋째는 지금까지 남명학에 대한 연구는 단기간에 폭발적인 성과를 만들었다. 300종이 넘는 단행본 발간과 2500편이 넘는 연구논문 그리고 박사학위만 30명 이상을 배출했다.

이제는 개인으로서는 하기 어려운 연구 즉 집단이 참여하는 프로젝트연구가 절실하다. 남명학파의 귀중한 자료들을 번역하고,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들을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사업, 남명학파 고문헌 총서발간, 남명학파 고문서 발굴연구, 남명학파의 인물 재구성 등 다양하고도 절실한 사업들이 너무나 많다.

넷째는 남명학 및 경남학 관련 기관들의 연계사업이 중요하다. 경남도는 올해 경남연구원 산하에 ‘경남학연구센터’를 설립해 경남학 전반에 대한 연구를 시행하면서 해당 기관들과의 연계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경남학에 대한 연구는 다른 시·도에 비해 크게 늦었으며, 이에 대한 국가의 예산도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제부터는 경남연구원의 경남학연구센터와 한국선비문화연구원, 경상대학교의 남명학연구소 등이 중심이 되어 연구의 분야를 특색화하고, 협의체를 구성해 상시적으로 서로 논의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춰 나가야 한다.


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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