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부르는 희망 (1)진주단도박 자조모임
함께 부르는 희망 (1)진주단도박 자조모임
  • 백지영
  • 승인 2019.12.31 1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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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손에 끌려온 모임서 마음의 평화 찾다
아들 돌 반지 팔면서도 ‘도박중독 아냐’
가족 손에 억지로 찾았던 치유 모임
“혼자서는 힘드니 함께 걸어가요”

자조(自助)모임. 공통된 질병이나 심리·사회적 상황에 직면한 사람들이 모여 경험·감정을 공유하는 모임이다. 국가 기관 등 외부 지원이나 사회복지사·의사·심리학자 등 전문가 개입 여부는 모임 유형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같은 처지에 있는 서로의 아픔을 지지하며 문제를 돕는다는 점만은 같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아픔으로 병들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만의 고민을 하나쯤 지니고 있지만, 타인이 어떤 문제로 힘들어하며 어떻게 극복해 나가려고 하는지 내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는 쉽지 않다. 도내 자조모임이 점차 활성화되는 이유다.

본보는 같은 상황에 부닥친 사람 앞에서야 비로소 털어놓을 수 있는 그들의 속내를 듣기 위해 다양한 자조모임을 직접 찾아 연중 기획으로 싣는다. /편집자 주
 

 

2019년 12월 28일 오후 7시 30분께, 각종 모임으로 분주한 한 해의 마지막 토요일 황금 시간대에 진주시 하대동 성당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섰다.

도박으로 인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경험·힘·희망을 공유해 서로가 회복되도록 돕는 익명의 자조모임 GA(단도박모임)와 Gam-Anon(도박중독자가족모임) 회원 60여 명이었다.

평소라면 진주 단도박모임 회원 7~8명과 도박중독자가족모임 회원 5~6명으로 오붓했을 시간대지만 이날은 달랐다. 진주 모임 회원 중 3명의 단(斷)도박 100일, 1년, 2년을 맞아 ‘잔치’가 열렸기 때문이다. 도박을 중단한 지 100일을 비롯해 1년, 2년 등 매 주기가 되면 이들을 축하하고 소감을 듣는 잔치를 연다.

진주 모임 회원들의 단도박 이야기를 듣기 위해 창원·거제 등 도내 타 도시는 물론 부산·울산·구미·대구 등 다른 지역 모임 회원들이 진주를 찾았다.

“선생님 단도박 2주년 축하드려요” 안부 인사를 나누는 목소리가 밝았다. 영화·드라마 등에서 흔히 묘사되는 음침하거나 피폐해 보이는 군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세대부터 흰 머리가 무성한 어르신까지 모두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단도박모임과 도박중독자가족모임은 각각 별개의 모임으로 회합도 각자 다른 방에서 진행한다. 중독자와 가족이 겪는 고통이 다르기에 때문이다. 간혹 회합을 끝낸 후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분리돼 있다.

이날 양 모임의 회합은 잔치로 인해 평소보다 간략하게 진행됐다. 도박은 혼자 힘으로는 끊기 어렵기 때문에 서로 마음을 합치고 격려해야 한다는 뜻에서 ‘협심자(協心者)’라고 불리는 중독자 방에 들어섰다. 회합이 시작된 방은 조금 전 안부를 묻던 바깥 홀과는 달리 경건하면서도 엄숙한 기운이 감돌았다.

“안녕하십니까. 신안 정입니다. 저는 도박중독자임을 시인합니다. 도박종류는 포커와 화투입니다. 단도박친목모임에 처음 참석한 날짜는 2008년 9월 20일이고 도박을 마지막으로 한 날은 2017년 4월 8일입니다. 지난 일주일간 잘 지냈습니다”

익명 모임답게 본명 대신 읍·면·동(실제 거주하지 않는 곳도 가능)에 성씨를 붙인 호칭과 함께 5단계 자기소개가 시작됐다. 스스로 도박중독자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했던 도박 종류, 마지막 도박을 한 날짜를 타인에게 드러내는 자리. 이날 처음으로 단도박모임을 참여한 2명의 초심자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순서였다. 모임 당일까지 도박을 하다가 가족 손에 이끌려 이날 모임을 찾은 한 초심자는 “지난 일주일간…(침묵)…아주 뭣 같이 생활했습니다”라고 소개했다.

도박이 완치가 불가능한 진행성 질환답게 협심자들의 도박에 대한 규정은 사회의 일반 인식보다 조금 더 엄격하다. 운을 좇다 인생 가장 끝자락까지 가본 이들답게 조금이라도 돈과 운을 결부시킨 종류는 모두 금기다. 1000원짜리 음료 내기나 복권, 주식. 가볍게 시작하더라도 도박중독자에게는 다시 요행을 바라게 되고 결국 파탄에 빠지게 되는 단추로 작용하기 때문에 ‘재발’이라고 본다.

“13년 잔치까지 했지만 재발해 4년을 방황하다 다시 모임에 나오기 시작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노력하겠다” “재발 없이 100일, 1년, 2년 가는 게 쉽지 않다. 진주 모임이 활성화돼 서로 앞선 사람을 보고 잘 따라가는 것 같다. 조금만 어긋나도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기 쉬우니 방향성을 잘 잡고 나아가길 바란다” 재발 고통이 큰 만큼 관련 다짐과 조언이 많았다.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잔치 소감문 발표. 분명 이름은 잔치였는데 마지막엔 눈물 잔치가 됐다.

단도박 1년 차 하대 하 선생은 불법 스포츠 토토를 하던 회사 동료를 통해 도박을 시작하고 중독돼 카지노까지 다니기 시작했다.

7년간의 도박 생활로 친구, 지인, 돈, 직장, 신뢰… 수많은 것을 잃은 그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결심한다. 유서를 남기고 남해 바다로 떠났지만 다행히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낚시로 해소하곤 했던 그의 아버지는 “아무리 힘들어도 아들이 갔던 남해 그 바닷가는 고기가 잘 물어도 절대 가지 않게 된다”고 했다.

1년 전 부모님의 손에 끌려 단도박모임을 찾은 당시의 그는 ‘같은 도박중독자끼리 무슨 힘이 되겠냐’며 불신에 차 앉아 있었지만 어느새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더는 도박하느라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스포츠 경기 결과에 밤을 지새우지 않아도 돼 좋다. 빚을 생각하고 돈에 집착하면 다시금 도박에 손을 댈까봐 1년간 착실히 이자 갚기에만 집중했다. 내년부터는 이자를 줄일 방법을 모색할 계획이다.

하 선생은 “1년 동안 슬럼프도 있었지만, 모임을 나오지 않았다면 지난 생활을 진정으로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행복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진주 모임의 대표이자 2주년을 맞이한 상평 정 선생은 ‘모임에 같이 나가지 않으면 이혼하겠다’는 아내의 말에 억지로 단도박모임을 찾으면서도 본인이 도박중독자라는 자각을 하지 못했다. 아내의 임신 중에 스포츠 토토를 시작한 그는 임신한 아내가 아파 대학병원에 입원했을 때에도, 아들이 태어나는 날에도,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도 도박을 했다. 도박 자금 마련을 위해 아들 돌 반지도 팔았고, 샤워 중에도 도박을 위해 핸드폰을 보면서도 ‘내가 원하는 언제든 도박을 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교인 그에게 아내를 따라 나온 성당에서의 모임은 거부감이 컸고 보여주기식 같았지만 억지로라도 다니다 보니 그의 삶도 달라졌다. 채무 개인 회생을 진행했고, 경매로 넘어가려던 집 문제도 잘 해결했다.

요즘 들어 그는 도박했던 것을 뼈저리게 후회한다. 그는 “부모님 건강이 안 좋아지는데 아들이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고 그냥 바라만 봐야 하는 게 정말 힘들다”고 고백하다 눈물을 쏟았다. 듣고 있는 다른 협심자들도 하나둘 눈물을 흘렸다. 아내의 다독임에 다시 이야기를 이어간 그는 “아직 단도박을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저 억제만 하고 있을 뿐 나중에 마음의 여유가 생겼을 때가 진짜 단도박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며 더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표했다.

이날 잔치를 한 3명의 협심자에게는 조그만 오뚜기 선물이 전달됐다.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일어나는 오뚜기처럼 잘 일어서라는 뜻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어쩔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주시고, 이를 구별하는 지혜도 주소서”

회합을 마칠 때면 협심자들이 다 함께 합창하는 구절처럼 그들에게 평온함과 용기와 지혜가 언제나 함께하기를 바랐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단도박모임&도박중독자가족모임은
Gamblers Anonymous(익명의 도박중독자들)의 약자인 단도박모임 GA는 1957년 미국에서 만들어져 1984년 한국에 상륙했다. 현재는 운영 방식에 대한 이견으로 두 단체로 나눠진 상태다. 뿌리 모임이 동일해 이름이 같은 탓에 협심자들은 각 단체의 사이트 중간 주소에 따라 co와 or로 구분한다. co는 남부 지역, or은 수도권 중심으로 모임이 활성화돼 있다. 현재 재통합 논의가 꾸준히 진행 중인 상태로 둘 중 어느 모임에 나가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도박중독자 가족모임은 별개의 모임이지만 같은 장소, 시간인 경우가 많다.

GA 모임과는 별개로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각 지역센터도 자조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창원에 위치한 경남센터(055-264-7082나 1366)는 매주 목요일 모임을 개최한다.

 

 

※도박성 자가 문진 20문항

01 당신은 일이나 공부를 하지 않고 도박으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까?
02 도박이 당신의 가정생활을 불행하게 만들었습니까?
03 도박이 당신평판에 나쁜 영향을 끼쳤습니까?
04 도박을 하고 나서 후회하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05 당신은 빚을 갚기 위해서나 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도박을 했던 적이 있습니까?
06 도박이 당신 야망이나 능력을 감소시키는 원인이 되었습니까?
07 당신은 도박으로 잃은 돈을 가능하면 빨리, 다시 도박을 해서 되찾아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까?
08 돈을 따고서도 또 다시 도박판에 가서 돈을 더욱 많이 따야 되겠다는 강한 충동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09 당신은 대체적으로 가지고 있던 돈이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 도박을 했습니까?
10 도박을 하기 위해 돈을 빌린 적이 있습니까?
11 도박을 하려고 돈이 될 만한 것을 판 적이 있습니까?
12 당신은 ‘도박밑천’ 때문에 정상적인 지출을 꺼린 적이 있습니까?
13 도박이 당신과 가족들의 생활을 소홀하게 만들었습니까?
14 당신이 계획했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동안 도박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15 당신은 불안, 걱정, 권태, 외로움, 실패 또는 손실을 모면하기 위하여 도박을 했던 적이 있습니까?
16 당신은 도박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나쁜 일을 하였거나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17 도박이 당신의 수면을 어렵게 만든 적이 있습니까?
18 당신은 부부싸움, 의견대립, 실망, 좌절감 때문에 도박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19 당신은 짧은 시간 도박으로 한 밑천 잡아보겠다는 강한 충동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20 당신은 도박문제 때문에 자해나 자살을 하려고 깊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 대부분의 도박중독자들은 이 질문들에 대해 7개 이상 ‘예’라고 답할 것입니다.

 

 

‘잔치’가 없는 평상시 진주 단도박모임의 회합 모습. 도박중독으로 인한 고충을 서로 나누고 단도박을 위한 마음 가짐 등을 공부한다. /사진제공=진주 단도박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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