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492)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492)
  • 경남일보
  • 승인 2020.01.02 17: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42)창선도 출신 김봉군과 양왕용 교수의 문단 이력 읽기(1)
창선도는 남해군 창선면으로 남해도의 삼동면 해안에서 지족해협을 사이에 두고 약 1㎞ 떨어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9번째로 큰 섬이며 1980년 6월에 창선교를 통해 연결되었고 2003년에는 창선 삼천포대교를 통해 사천시와 연결되었다. 삼국시대에는 ‘유질부곡(有疾部曲)’이었고 고려 현종때 창선현으로 진주에 속하였다. 1906년 이후 남해군에 이속되어 남해군 창선면 소속이 되었다.

김봉군 교수는 여기서 태어났고, 육지와 창선도가 다리로 연결될 무렵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섬에/ 다리 놓지 말라/ 천년 그리움을 지우지 말라// 섬은/ 그냥/ 솔잎 몇 키운/ 흙덩이 바윗덩이가 아니다// 섬은/ 섬으로 있도록 하라// 모래들의 천연 은빛을 죽인/ 콘크리트의 그 다리들로는/ 그와 나의 거리가 / 지워지는 게 아니다// 천년 그리움으로 떠 있는/ 아름다운/ 섬”(김봉군의 <섬> 전문)

섬은 그리움으로 영원이 떠 있다는 것이다. 아, 이 그리움을 육지 출신들은 알 수 있겠는가? 혹 불편과 소외와 낙도라는 뒤떨어짐의 안타까움에다 그 거리를 재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시다. 이 시 한 편으로 김교수의 살아온 길과 철학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김봉군 교수는 문학평론가로서의 활동이 주를 이루는 문인인데 주요 이력을 살펴볼까 한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로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이어 동대학 법과대학 법학과에 학사편입하여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고 서울사대부고, 서울 성심여고교사,서울 성심여자대학 교수를 거쳐 가톨릭대학교 교수, 인문과학연구소장, 인문대학장을 거쳐 교수로 정년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남해 창선 진동초등학교, 창선중힉교, 진주고등학교를 거쳐 상기 서울대학교 이후의 학제를 이수했다. 문단 경력을 보면 1971년 새시대문학에 시로 등단하고 1981년 현대시학에 평론 ‘시와 믿음과 삶의 합일-구상론’으로 등단하여 문학사상, 현대문학, 월간문학, 시문학 문학비평 등에 예리한 비평안으로 한국비평의 중심이 되는 활동을 펼쳤다.

김교수는 그의 고희기념시문집 ‘여럿이서 혼자서’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적었다. “성직자가 되고 싶었으나 주님은 끝내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평신도로 학문과 교육과 봉사의 길에서 헌신해온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왕양한 태평양 물기슭, 달빛 윤슬 일렁이는 밤 바닷가, 갈게가 집을 짓던 금모랫벌 아름다운 고향에서 자라나게 하여 주신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성직자가 되고 싶었던 이로 우리는 장면 총리를 거명할 수 있는데 그 밖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되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한 것이 성직자이고 보면 그 자리를 바라보고 살았던 이들은 대부분 한 분야에서 성공의 언덕을 올랐던 분들이라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필자는 김봉군 교수의 진주고등학교 1년 후배여서 고등학교 시절에 알고 지냈던 사이는 아니었고 2학년 때 진주고등학교 교지 ‘비봉’을 통해 이름을 알았다. 그는 교지에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제목으로 기억되는데 아마도 에세이로서 사상적 종교적 번민 같은 것을 쓴 것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로는 선배가 니체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우러러 보였는데 필자도 그 책에 ‘가락국 구형왕의 전설’이라는 글을 실었지만 내용은 기억되는 부분이 없다. 그후 대학에 간 김교수는 대학 교복을 입고 모교에 나타났지만 가까이 갈 수 없었던 기억밖에 없다.

김교수는 대학 진학을 법대로 가기로 정해놓고 공부했는데 원서 쓸 무렵 진주고등학교 교장 정봉윤 선생께서 법대 원서를 쓰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집 사정을 잘 아셨던 분의 말씀이므로 지나가는 말로 들을 일이 아니라 여겼으면서도 스스로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당시 김봉군은 우등생으로 법과대학 입시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당당히 포부를 밝혔다. 모순 많은 세상의 불의 부정을 혁파하기 위해서라고 밝힌 것이다. 아울러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통로가 법과대학 밖에 없음도 강조했던 것이다. 한참 생각에 빠져 계시던 교장선생님은 머리를 흔드셨다. 아니라는 뜻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