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갑옷을 보러
말 갑옷을 보러
  • 경남일보
  • 승인 2020.01.0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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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함안군가야문화유산담당관

 

1992년 6월 6일 새벽 함안군 가야읍에 있는 말이산 북쪽 능선 조그만 봉우리 위에서 굴삭기 소리가 울렸다.

현충일이고 오락가락 빗방울이 뿌리고 있어도 해동아파트 신축 현장은 부산했다. 당시 신문배달을 하던 이병춘도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굴삭기가 파낸 흙속에 거무튀튀한 쇠가 눈에 띄었다. 함안이 아라가야의 땅임을 알고 있던 그는 자기가 본 것을 예사롭게 생각하지 않고 사학과 출신인 안삼모 지국장에게 이야기했다.

그런쪽에 조애가 있었던 안 지국장은 사학과 동료에게 이를 알렸고 성산산성에서 발굴조사를 하던 박종익(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장) 연구사에게 연락이 닿았다.

새참을 먹느라 쉬고 있던 굴삭기 기사가 다시 공사를 재개할 즈음 현장에 도착한 박 연구사는 즉시 공사를 중지시키고 쇠를 수습했다. 놀랍게도 그 쇠붙이는 말의 왼쪽을 감싸는 갑옷의 일부였다.

그는 나중에 마갑총이라 불리게 된 무덤에서 말의 오른쪽을 감싸는 온전한 형태의 갑옷과 말의 얼굴을 보호하는 마면주 등도 발굴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출토된 마갑(馬甲, 말의 갑옷)은 그렇게 호국영령을 기리는 뜻깊은 날에 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1500년을 흙속에서 지내던 마갑의 존재가 알려지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의 이목이 필연으로 이어져야만 했으며 어느 한 부분이라도 빠뜨렸다면 우리는 그 존재를 몰랐을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우연이 필연이 된 것은 하늘에 있는 아라가야 왕들의 영혼이 이제 자신들을 되돌아보라고, 아라가야를 기억하라고, 찬란했던 영광을 되살리라고 명령한 것이리라.

그 때문인지 같이 출토되었던 고리자루 큰칼과 함께 함안 마갑총 출토 말갑옷이 지난해 12월 26일 보물 제2041호로 지정됐다.

그 의미를 두고 가야의 재조명이나 부활 등 미사여구를 붙일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피 속에 흐르는 기술을 되살리는 것이다.

선조들은 지금과 같은 첨단기술의 시대에도 재현하는 것이 아주 벅찬 기술을 보유했다.

이제 우리 스스로 철기의 꽃인 말 갑옷을 만든 선조들처럼 섬세하면서 세련된 기술로 나라와 국민을 부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세밑에 들려 온 낭보와 함께 그 거무튀튀한 쇠를 보러 함안박물관으로 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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