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2)경남산악연맹 창립
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2)경남산악연맹 창립
  • 경남일보
  • 승인 2020.01.05 20: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남 33개 산악회 모여 마산서 첫 출발
1971년 시작된 한국의 히말라야 도전
가난과 배고픔을 등정의 열정으로 풀어
1977년 경상남도산악연맹 결성 뜻 모아
3년 여 노력 끝에 부산경남서 분리 창립
 
지난 1980년 경남산악연맹의 창립총회 모습.
1971년 한국 최초의 히말라야 원정이 이루어졌다. 박철암 대장이 이끄는 원정대는 로체샤르(8400m)에 도전장을 던졌다. 최수남 대원은 이 등반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8000m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비록 등정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당시 한국의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엄청난 도전이었다. 첫 원정에 이어 1970년대 경제성장과 맞물리면서 국내에서 등산 붐이 일기 시작했다. 젊은 산악인들은 가난과 배고픔을 산에 대한 열정으로 승화시켰다. 1973년 3월 8일 치안국이 전국 경찰에 산불로부터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휴대 버너를 갖고 등산할 수 없다는 ‘버너휴대 등산금지’ 지시를 발표했다. 그해 3월 10일 김현옥 내무부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입산통제’ 조치를 내렸다. 이 같은 조치는 부산·경남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라 부산·경남 산악인들이 주축이 된 부산시연맹도 새로운 등산 운동을 모색하고 ‘산악 새마을운동’을 정착시키게 된다. 실제로 1973년 12월 21일 열린 부산직할시연맹 정기총회에서 “본 연맹은 산악운동을 범국민 운동화해 국민의 체력을 향상하고 명랑한 사회 기풍을 진작시킴과 아울러 부산·경남 일원의 산악단체를 통괄 지도하며, 산악인과 등산에 관한 전반적인 연구 수련으로 우수한 산악인을 양성하여 산악운동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국력배양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부산직할시연맹을 부산경남연맹으로 명칭을 개정했다.

1976년 5월 10일 진주산악회가 대한산악연맹 부산경남연맹에 가입함으로써 경상남도산악연맹 창립을 태동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77년 4월 이순석 진주산악회장을 비롯해 박홍식, 김삼랑, 민기훈, 이찬영, 조병곤, 이장환 등 진주산악회 회원들이 경상남도연맹을 결성키로 뜻을 모았다. 또 마산(정연길), 밀양(김용호), 통영(김세윤·이소원), 함양(문호중·정구순), 삼천포(정영환·송기태·김종태), 산청(오문식)지역에서 경남연맹을 창설하기로 합의했다.

이들은 경남에 있는 산악회를 찾아가 경상남도연맹의 필요성을 설득하며 결속을 다졌다. 김삼랑은 부산경남연맹을 방문해 경남연맹을 분리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쉽지 않았다. 진주산악회 이순석 회장은 대한산악연맹을 방문, 김영도 회장에게 경상남도연맹의 창립 근본 취지를 설명하는 등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1977년 11월 1일 경상남도산악연맹 발기위원회를 한국예총 진주지부 사무국에서 개최했다. 발기인은 이순석, 박홍식, 김삼랑, 민기훈, 이찬영, 조병곤, 이장환, 조성환, 정연길, 김세윤, 이소원, 문호중, 정구순, 정영환, 송기태, 김종태, 오문식 등 18명이었다.

1978년 2월 26일 경남지역 23개 산악회 대표자가 모여 경상남도산악연맹을 결성, 회장에 이순석씨가 피선돼 본격적인 분리 독립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산악회와 대표는 다음과 같다.

진주산악회(이순석), 망경산악회(정봉엽), 진주시청산악회(김종규), 비봉산악회(김이태), 경상대교수산악회(구귀천), 사우산악회(하만일), 삼천포산악회(조정만), 함양산악회(정구순), 마천산악회(문호중), 진주교직원산악회(금정식), 선학산악회(김종백), 경상대학교 OB산악회(권판근), 산우산악회(최점석), 대동공업산악회(우창노), 덕산두류산악회(오병철), 산청산악회(오문식), 맥산등반클럽(강윤식), 충무일요산악회(김세윤), 서경산악회(안승균), 대성산악회(정연길), 통영산악회(김민수), 동영정기산악회(최진섭), 고성가야산악회(홍태훈).

1978년 3월 28일 대한산악연맹에 경상남도연맹 설립 승인 요청서를 제출했지만 몇몇 인사들의 방해로 1년 넘게 답이 없었고, 1979년 4월 3일 부산경남연맹 이사회에서 조건부로 분리를 의결했지만 모 산악회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79년 5월 18일 대한산악연맹 이사회에서 경상남도연맹 창립에 대한 업무를 경남연맹 창립추진위원회에 일임하기로 의결했다.

이에 따라 부산경남연맹은 조건부로 경남지역 산악회(경남연맹 창설 준비 당시 29개 산악회) 모두를 일단 부산경남연맹에 가맹한 후 분리해 주겠다는 이율배반적인 움직임이 있었다. 분노한 경남 산악인들은 1979년 5월 20일 분리추진위원회 대의원 총회에서 단독으로 설립을 추진키로 결의하고 33개 산악회 가맹단체로 분리 작업에 박차를 가하며 마지막 분리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1980년 4월 11일 경남연맹 분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연맹 회장단과 관련 상임이사, 경남지역 산악회 대표 연석회의가 열렸다. 홍순박 회장과 김억석·최석환 부회장, 윤완석 전무이사, 이충기 총무이사, 김석이 학술이사를 비롯해 진주산악회 이순석·이찬영·김삼랑씨, 충무산악회 방형근씨 등 12명이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서 진주산악회와 일부 산악회는 “가칭 ‘경남연맹’에 대한 현황 설명에서 경남의 30개 단체 가운데 12개 단체가 분리에 동의했다”며 “가능한 한 빨리 경남연맹을 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부 산악회측은 반대 입장을 밝혔다. 분리에 반대한 산악회들은 “분리는 시기상조”라면서 “지역 광역화로 경남연맹이 분리 독립한다면 경남연맹의 경우 서부·동부로 이원화가 불가피하다. 원칙적으로 분리는 반대하지만 1년간 준비 활동 후 분리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충무산악회는 “지역 편중을 방지하기 위해 도청 소재지 확정 때까지 잠정적으로 제3의 지역인 마산에 연맹 본부를 두고 진주산악회의 가칭 ‘경남연맹’의 모든 것은 백지화하고 경남의 시·군 1개 단체씩 약 30개 단체로 ‘경남연맹’을 재결성하고 교통 편의에 따라 3개 지역으로 크게 나눠 창립준비와 정관심의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주장했다. 결국 상반된 주장 속에서 마산시에 두기로 합의했다.

이어 4월 15일 열린 회장단 회의에서 진주산악회측은 충무산악회가 주장하는 경남연맹 분리를 3개 지역에서 결성하는 것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충무산악회측은 경남연맹과 추후 가맹단체가 합쳐지면 너무 방대해 의견 조정이 어렵다면서 진주와 울산, 충무 3개 지역 조직책으로 가칭 ‘경남연맹’을 조직해 나가자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연맹 이사들 역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진주, 울산, 충무 3개 단체안을 검토해 4월 25일까지 서면으로 제출한 후 회장단 직권으로 조정해 차기 이사회에서 인준 결정하는 것으로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이에 따라 회장단 직권으로 경남연맹분리창립위원이 지명되고 5월 7일 연맹회의실에서 윤완석, 이충기, 방형근, 김삼랑 위원과 이찬영, 김석이 객원이 참석한 가운데 다음 사항을 결정했다. “창립총회는 5월 17일 오후 2시 진주시상공회의소에서 하고, 18일 오전 11시 마산시 소재 연맹회관에서 현판식을 갖는다. 연맹 가맹금은 1만원과 연회비 1만원으로 하고 기타 세부사항은 충무산악회 방형근과 진주산악회 김삼랑에게 위임키로 했다.”

이 결정에 따라 지난 3년간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경남 산악인들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부산경남연맹에서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경남연맹 임원은 초대회장 이순석, 부회장 김세윤·안승균, 감사 송기태·서수용, 전무이사 김삼랑, 이사 이찬영·이장환·조병곤·정연길·이병화·정구순·권판권·노재덕이었다.

1980년 5월 17일 오후 2시 진주상공회의소에서 이순석 초대회장과 대한산악연맹 김영도 회장, 그리고 경남지역 33개 산악회 회원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총회가 열렸으며 이튿날 오전 11시 마산시 동성동 103번지에서 경남연맹 현판식을 가져 부산경남연맹에서 경남연맹이 분리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경남산악연맹 창립식에서 참가자들이 현판을 달고 있다.

 ■창립 당시 33개 단체

진주산악회, 대동공업산악회, 사우산악회, 충무일요산악회, 하동하얀돌산악회, 삼천포산악회, 통영산악회, 경남은행산악회, 산우산악회, 산청산악회, 삼현여고산악회, 진주교직원산악회, 덕산두류산악회, 산청군청산악회, 경남일보산악회, 산호산악회, 서경산악회, 진주시청산악회, 대성산악회, 비봉산악회, 동양전기산악회, 남해산악회, 맥산등반클럽, 초마롱마산악회, 함양산악회, 선학산악회, 거창산악회, 고성가야산악회, 비룡산악회, 경상대학교 교수산악회, 마천산악회, 망경산악회, 진주문화방송산악회

경남산악연맹은 창립 이후 히말라야 등 해외원정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실력을 발휘했으며 지리산등산학교 운영, 경남스포츠클라이밍 대회 개최, 자연보호경진대회, 영호남 친선 등반 등 굵직한 사업들을 40년간 이어오고 있다. 특히 경남산악연맹은 해외 원정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히말라야 8000m 자이언트급 등반에서 수많은 한국 초등을 이뤄냈다. 낭가파르바트 한국 초등, 1994년 안나푸르나 남벽 한국 초등, 1995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한국 초등, 2000년 K2 남남동릉 한국 초등, 2004년 가셔브롬2봉 남동릉 한국 초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것은 2002년 티베트에 위치한 세계 14위봉 시샤팡마에서 한국 히말라야 등반 40년 만에 한국 최초로 8000m 신루트를 만든 것이다. 경남 출신 강연룡과 박정헌은 시샤팡마 남서벽에 코리아 루트를 만들었다. 그들은 한국도로공사 소속인 것을 감안해 루트를 ‘코리안 하이웨이(KOREAN HIGHWAY)’로 명명했다.

히말라야에서 새로운 루트로 초등하면 등정자들이 이름을 짓고 영원히 통용되고 있다. 히말라야 8000m 자이언트급 봉우리에 우리가 붙인 이름을 세계 산악인들이 사용하는 것은 2002년 시샤팡마가 처음이다.

박명환(경남산악연맹 부회장·경남과학교육원 홍보팀장)
 

제16회 대통령기쟁탈 전국등산대회 팸플릿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