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빛나는 손
누구보다 빛나는 손
  • 경남일보
  • 승인 2020.01.0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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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피아노를 치며 처음으로 느꼈다. 내 손은 또래보다 작고 통통하다는 걸. 내 엄지와 새끼손가락은 고작 도에서 도를 간신히 눌렀다. 일직선으로 쭉 펴도 손가락은 겨우 8개 건반 위에 올라갈 뿐이었다. 손은 노력으로 바뀌는 건 아니었기에 나는 대신 손톱을 길렀다. 손톱이라도 길쭉해야 짧은 손가락이 돋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름 신경 써서인지 내 손톱은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을 닮았다. 8살부터 22살까지 내가 했던 손톱 관리는 딱 하나였다. 손톱 둥글게 깎기. 손톱은 내가 원하는 모습을 유지하며 길고 예쁘게 자라났다. 그 모습만 봐도 기분이 좋았지만 얼마 전 다낭 여행을 가서 새로운 경험에 눈을 뜨게 됐다. 다낭은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싸서 여태 비싸서 못했던 네일아트를 받았다. 남색과 옅은 분홍색이 손톱에 한 칸씩 교대로 발려졌다. 특별한 디자인은 없어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더 예쁘게 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겨났다.

우리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젤 네일도 받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비싸서 가게로 발걸음이 향하질 않았다. 디자인과 가격, 둘 다 포기하기 힘들었던 나는 요새 유행하는 젤 네일 스티커를 샀다. 하나에 3명은 할 수 있는 분량이었기에 기분 좋게 질렀다. 마침 방학이라 엄마, 나 그리고 동생까지 하면 되겠다는 마음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택배가 도착했다. ‘엄마부터 먼저 해줘야지’ 하며 엄마 손을 잡자마자 여태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 밀려왔다. 답답함, 슬픔, 죄책감, 미안함. 참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인 채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손톱은 왜 이렇게 짧고 뭉툭해?” 엄마는 멋쩍은지 긁적이며 대답했다. “원래는 길었는데 일하다 보니 그렇게 됐지.” 내가 아무 말 없이 스티커만 붙이자 엄마는 웃었다. “그래도 손톱이 짧아서 스티커 하나로 손톱 2개도 붙이겠다.” 속이 답답했지만 그냥 같이 웃었다.

내가 손톱을 예쁘게 기를 동안 엄마는 열심히 수세미 질을 하고 뜨거운 물에 손을 넣었다. 늘 내 손톱을 잘라주던 엄마였는데 나는 한 번도 엄마 손을 자세히 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늘 믿는 큰딸이라는 게 이다지도 변변찮아서 너무 미안했다. 그런 딸이 해준 네일아트라고 여기저기 자랑하는 엄마를 보니 더 화가 났다. 손톱이 닳고 손이 늙어갈 때 엄마는 무슨 기분이었을까. 이제야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빛나는 엄마의 손이.

박수희(경남대학보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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