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창의도시 진주 (2)무형문화재(민속예술)
유네스코 창의도시 진주 (2)무형문화재(민속예술)
  • 최창민
  • 승인 2020.01.13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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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가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지정된 바탕에는 조상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다양하고도 질박한 진주의 전통 무형문화재가 있다.

궁중계열 춤에서 지방민속무용으로 변환된 역사성을 지닌 진주검무, 진주포구락무를 비롯해 진주교방(晋州敎坊)굿거리춤, 한량무, 진주삼천포농악 등 주옥같은 민속문화예술장르가 전승되고 있다. 특히 진주검무는 ‘국가무형문화재 12호’로 현존 문화재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우아하면서 위엄있는 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진주검무(晋州劍舞·국가무형문화재 제12호)=쪽머리에 전립을 쓰고 8명의 무희가 춤을 춘다고 해 ‘진주팔검무’라고도 한다.

궁중계열의 춤에서 지방민속무용으로 변환된 역사성이 있다. 검무는 현존 궁중계열의 무용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됐다. 예부터 여러 애국행사에는 진주검무를 추어 헌무(獻舞)한 것이 상례였다. 진주검무는 고종황제 때 궁중에서 선상기(選上妓)로 연희했던 ‘최순이’가 진주로 내려와 전수해 지금까지 명맥을 잇고 있다.

무복은 남색치마에 옥색회장 저고리를 입고, 치마를 걷어 사대(絲帶)로 동여매고 전복(戰服)을 입으며 머리에는 전립(戰笠)을 쓴다.

춤의 전반부는 칠색갑사의 색동 한삼을 양손에 낀 한삼 평사위로 시작한다. 곧 맨손 입사위로 이어지다가 본격적인 검무인 칼사위로 마무리 한다. 무구로 쓰는 한 쌍의 칼은 여타 검무와 달리 목이 꺾이지 않는다.

장단의 구성이 독특하고 춤사위가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우아하면서 위엄이 있고 차츰 경쾌하다가 발랄하게 이어지는 춤사위는 보는 이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현존하는 무형문화재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춤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진주삼천포농악(晉州三千浦農樂·중요무형문화재 제11-1호)=농악은 2014년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진주삼천포농악은 진주와 삼천포 지역에 전래되고 있는 농악으로 영남농악에 속한다.

악기는 꽹과리 징 장구 북 법고가 있고, 편성은 기수와 쇠 징 북 장구 법고, 양반, 포수로 돼있다. 모두가 흰 바지와 색깔 있는 저고리의 농악복에 색띠를 두르고 상모를 쓴다.

판굿에서는 채상모놀이가 돋보이며, 군사놀이인 팔진해식진(八陣解式陣)굿이 특이하다. 연희는 12차로 구분돼 일명 ‘12차 농악’이라고도 한다.

진주삼천포농악은 남부지역에 전승돼온 전문 연희집단인 ‘솟대쟁이패’가 구성되면서 전문 예인의 기예와 농촌의 풍물놀이가 결합돼 오늘날까지 전승됐다. 판굿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어 예술적 가치가 높으며, 팔진법이라든가 버꾸놀이, 상쇠놀이, 무동놀이가 있다.

△한량무(閑良舞·경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한량, 색시, 스님, 주모, 별감, 마당쇠, 상좌 등 7명의 소리꾼이 등장해 꾸며내는 일종의 놀이 춤이다. 한량은 호반출신으로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사람 또는 돈 잘 쓰고 잘 노는 사람을 말한다.

스토리는 한명의 색시를 사이에 두고 한량과 스님이 사랑싸움을 벌인다. 절개 없이 놀아난 색시가 드디어 양쪽 모두에게서 버림을 받고 오갈 데 없게 된다는 내용. 무언극 춤으로서 보기 드문 민속무용이다.

한량은 전반부에 고아(高雅)하고 점잖게 춤을 춘다. 하지만 여인(색시)을 스님에게 빼앗긴 후반부에는 주모 때문에 술에 취해 추는 춤은 현격하게 변한다. 이렇듯 상황에 따라 변하는 춤사위는 다양할 수밖에 없다. 또 10년 수행을 팽개치고 색시의 교태에 홀린 스님의 파계춤은 고뇌와 희열의 반복이다.

아리따운 미모와 요염한 교태로 한량과 스님을 한눈에 홀리는 색시의 요요한 춤사위, 남성다운 기개와 멋을 지닌 별감의 춤, 영악하게 닳은 주모의 꽁닥춤, 마당쇠의 능글맞은 춤이 각기 독특한 개성과 맛을 지닌다. 원래 남사당패에서 연희됐던 것으로 조선후기에 성행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진주포구락무(晋州抛毬樂舞·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2호)=이 역시 궁중에서부터 유래돼 지방으로 전승된 춤으로 외무와 내무로 편을 갈라 채구(공)를 포구에 넣는 놀이춤이다. 공을 포구에 넣으면 꽃을 상으로 받고, 넣지 못하면 얼굴에 먹으로 퉁방울을 그리는 벌을 받는다.

진주포구락무는 궁중 문화가 지방으로 전래돼 진주교방에서 자주 연희됐다. 고종 때 진주목사였던 정현석이 기록한 ‘교방가요’가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궁중가무가 지방으로 내려오면서 민속화됐으나 의상, 도구, 절차 등에서 약간의 변화가 생겨서 나름대로 특성을 갖는다. 궁중무용과는 달리 화관, 몽두리가 없고 의상은 평상복이다. 벌로 받는 먹퉁방울을 궁중포구락의 경우 뺨에 그리지만 진주포구락은 눈가에 그린다는 점이 다르다.

△진주오광대(晋州五廣大·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7호)=조선후기 상업의 발달로 시장이 성행해 자연적으로 시장의 놀이판 문화가 발달하게 되고, 문화가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경남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독특한 판문화 중 대표적인 것이 오광대다.

제1마당 오방신장놀음, 제2마당 문둥이놀음, 제3마당 양반말뚝이놀음, 제4마당 중놀음, 제5마당 할미놀음으로 구성돼 오광대라 불린다.

진주지역에서 토착화된 진주오광대는 1930년대까지 연희됐다가 중단됐으나 당시 활동했던 배또문준(할미역)의 고증에 의해 1997년 복원됐다.

조선후기의 문란해진 사회상과 사회질서를 풍자하는 내용으로 짜여 있다. 특히 복원 당시 연희됐던 대본과 사용됐던 탈이 남아있다. 다른 지역의 오광대보다 다양한 신분이 등장하고, 제1마당에서 오방신장이나 제5마당에서 죽었던 할미가 소생하는 것이 특징이다.

△진주교방(晋州敎坊)굿거리춤(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1호)=고려 문종 때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관기제도에 의해 교방청에서 전승된 춤이다. 조선의 몰락으로 교방과 관기제도가 폐지되자 기녀조합이 결성되고 기생양성소인 권번이 생겨나서 맥을 이어왔다.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 민속무로서 우리 춤의 네 가지 요소인 한, 흥, 멋, 태와 정, 중, 동을 고루 갖추고 있다.

차분하면서도 은은하고, 섬세하면서도 애절한 무태는 보는 이를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굿거리춤, 입춤, 수건춤으로 불린다. 무복은 남색치마와 자주 짓고름을 한 미색저고리에 남색허리띠와 노란노리개를 찬다.

춤은 맨손사위에서 소고춤으로 연결되는데 무태의 아름다움과 손놀림, 겨드랑사위가 뛰어난 춤으로 오랜 역사를 이어온 교방계열의 춤이다. 교방출신의 궁중무희였던 최완자로부터 전승됐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진주검무동아리 발표
진주검무
진주세계 민속예술비엔날레
진주오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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