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일기는 대화다
[교육칼럼] 일기는 대화다
  • 경남일보
  • 승인 2020.01.14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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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택 前 창원교육장
어느 공직자의 업무수첩이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일지를 작성한 본인은 정확한 기억과 바른 판단을 위하여 기록했을 것이고 그 수첩에 근거하여 일 처리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되니 스스로 그 수첩을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니 수첩에 적힌 사안의 진실 여부가 아니라 그 사람됨에 대해 많은 의문이 든다. 그리고 항간에는 일지 또는 일기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려서 우리 사회의 품격을 떨어뜨리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요즈음 학교에서의 일기 쓰기 지도가 전 같지 않다고 한다. 아이의 일기를 들여다보는 것은 인권적 차원에서 옳지 않으며, 일기를 쓰는 아이 또한 억지로 쓰는 것이니 교육적 효과가 크지 않다는 주장이다. 전혀 틀린 말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기 쓰기는 교육적 효과가 크며, 초등학교에서의 일기 쓰기 지도는 중요한 교육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일기의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려면 일기 쓰기의 목적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일기는 타인이 볼 것을 전제로 쓰는 것이 아니다. 일기는 쓰기 능력을 기르지만 그것만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맞춤법이 틀렸다고 질책을 해서도 안 되고 남이 볼 것을 전제로 쓰는 거짓된 일기를 경계해야 한다.

일기는 개인의 삶에 대한 기록으로서 스스로와의 대화이다. 그러므로 일기를 들여다볼 경우에는 아이와 대화한다는 마음가짐이 요구된다. 이것은 필자가 교직생활에서 얻은 결론이기도 하다.

필자는 아이와 대화하기 위해서 일기 쓰기를 지도했다. 요일을 정해서 매일 한 명 한 명 아이의 1주일 치 일기를 읽고 일기장에 대여섯 줄 이상의 글로 대화를 나눴다. 일기를 통해서 알게 된 내용에 대해 칭찬하거나 아이의 행동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평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썼다. 물론 틀린 글자를 고쳐주거나 설령 옳지 않은 행동을 했다고 해서 꾸중하는 것을 일기장으로는 하지 않았다. 일기장에 쓴 선생님의 답글과 의견에 대해 아이들은 마음을 조금씩 열었다. 그리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기도 하였다.

어느 아이가 일기장에 아버지와 나눈 대화를 적었다. 그 내용은 새로 담임한 선생님은 어떠냐고 아버지가 물었는데 이 아이가 ‘그저 그래요.’라고 대답을 하였다는 내용이었다. 필자는 아이의 일기장에 썼다. ‘선생님이 ○○을 좋아하는 7가지 이유’를. 그 아이는 일기장에 써준 말대로 변화하였다. 학습 태도가 달라졌고, 당번 활동을 잘하였으며, 힘든 친구를 도와주었다. 일기장에 ‘○○은 학습태도가 좋으며, 친구를 잘 돕는 아이’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의 변화와 성장은 기대 이상이었다. 중간 정도의 학력이었던 아이가 졸업 때는 우등상을 받았고 교내 체육대회에서는 ‘책임을 다하는 아이’라는 칭찬이 힘이 되었는지 탈진할 정도로 종횡무진 활약하기도 하였다. 이런 것들이 일기장으로 시작된 위대한 변화라고 생각하며, 일기를 통한 교사와의 대화가 이룬 성과라고 확신한다.

일기는 대화이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이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진 일들에 대해 기록하는 것은 자신과의 또 다른 대화이다.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밝히고 스스로를 위로하거나 격려하며 타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쓴 일기는 어떤 힘을 가진 것 같다. 이러한 일기를 예의를 지키면서 열어보고 진심의 대화를 나눈다면 우리는 사랑하는 아이에게 좋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일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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