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도전] 김민창 진주향토시민학교 교장
[행복한 도전] 김민창 진주향토시민학교 교장
  • 임명진
  • 승인 2020.01.21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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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길 도와주는 야학교사의 길
평생 천직으로 알고 봉사하는 삶에 감사
 
지난 14일 찾은 건물 3층에 자리한 진주향토시민학교의 출문을 열자 옹기종기 모여 있는 10여 개의 책상과 벽면 한편에는 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녹색칠판이 눈에 들어왔다. 칠판에는 중학교 영어 과정이 빼곡히 적여 있었다. 막 오전 수업이 끝난 참이었다.
  

“23년 전 그때 처음 야학에서 만난 학생들의 간절하고 열정어린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진주시 봉곡동의 한 건물 3층에 자리한 진주향토시민학교 김민창(50)교장은 대학을 갓 졸업한 혈기왕성했던 그때를 떠올렸다.

진주향토시민학교는 1986년 문을 연 야학에서 출발했다. 당시만 해도 상평산단 등지에는 가정형편 등의 이유로 진학을 포기하고 일찍 직업전선에 나온 어린 학생들이 많았다.

지금도 진주지역에는 성격이 다른 야학들 몇 곳이 여전히 운영 중이다. 김 교장은 27살의 나이에 야학 교사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잠시만 하겠다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벌써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됐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두고 “말수도 별로 없는 내성적인 성격인데 이상하게도 하얀 분필을 손에 쥘 때면 열혈선생으로 변한다”고 평한다.


◇야학이요? 전단지 붙이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이 학교의 유일한 교사는 김 교장 혼자뿐이다. 강의실은 하나 밖에 없지만 매일 20명이 넘는 학생들이 그의 수업을 듣는다.

김 교장은 “진주를 비롯한 사천, 하동, 산청 등 서부경남의 각 지역에서 다양한 학생들이 찾고 있다. 특히 60대 이상의 만학도가 많은데 한글반을 비롯해 초등반, 중학반, 고등반 검정고시 과정이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야학과 인연을 맺었느냐는 물음에, “전단지를 붙이는 일부터 시작했다”는 웃음섞인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1988년 경상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어린 시절부터 전자공학에 관심이 많아 미래 공학도를 꿈꿨다.

“신입생 시절 하루는 아는 선배가 전단지를 붙여 달라는 부탁을 했어요. 야학 교사일도 아니고 전단지와 풀통을 메고 상평공단 곳곳에 붙이고 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하하”

그때만 해도 야학은 큰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여느 대학생처럼 전공을 살리고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우선 목표였다.

그런 그에게 대학을 갓 졸업한 1995년 야학과의 두 번째 인연이 찾아왔다.

자격증을 따고 한창 취업준비로 바쁜 그에게 이번에는 야학교사가 모자라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잠시 교사일을 맡아 줄 수 없느냐는 부탁이 들어왔다.

취업준비에 몰두해야 하는 터라 망설였지만 거듭된 지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이 잠시만이라는 단서를 달고 수락했다.

난생처음 야학교사로 나선 그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며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 어린 학생들의 열정에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이다.

취업준비는 뒷전으로 밀렸다. 이왕하는 것 제대로 해보자며 매일 교재연습을 하고 수업에 정성을 쏟았다.

야학이 재정상의 어려움에 처하자 두 팔을 걷어붙이면서 살림을 챙기기 시작했다. 자원봉사 교사와 학생 모집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렇지만 야학의 재정 상태는 도통 나아지지 않았다.

매달 지출해야 하는 운영비와 함께 비싼 임대료 부담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야학장소를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안타까운 사정이 1996년께는 지역 언론에 소개돼 뜻있는 이들의 후원으로 간신히 위기를 벗어나기도 했다. 지금의 봉곡동 자리에 옮겨온 것은 1998년 3월부터이다.

 
학생들이 모의고사와 받아쓰기를 보고 있다.

 

◇야학의 변화…근로청소년 대신 만학도가 채워

그동안 야학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경제가 급성장 하면서 어린 학생 대신 한글을 배우려는 노인들과 뒤늦게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만학도들이 빈자리를 채웠다.

때론 그 자신도 놀라울 때가 있다고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어떻게 학업에 대한 열정을 숨기고 살았을까 하는 물음 때문이다.

김 교장은 “최근에 아동을 위한 돌봄 정책 등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어르신이나 만학도를 위한 맞춤형 정책이 부족한 것 같다. 그렇기에 여전히 야학을 찾는 이들이 줄지 않는 것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책상에 앉아 한글을 배우고, 책을 따라 읽을 때는 그만한 보람도 없다. 한글과 알파벳, 수학, 과학을 비롯한 초·중·고 모든 교과과정을 김 교장 혼자 가르치고 있다.

김 교장의 열정 덕분에 진주향토시민학교는 1986년 개교 이래 검정고시 합격자 수가 800여 명에 달한다. 2016년에는 고졸 검정고시 최고령 합격자를 배출했다.

그중 대학에 진학한 이가 130여 명이고, 김 교장도 가지 못한 대학원까지 졸업한 이가 3명이다. 2018년에는 최고령 대학원 졸업생을 배출했다.

검정고시와는 별개로 한글공부와 기초영어를 공부하며 배움의 혜택을 받은 이도 1200여 명에 달한다. 당장 오는 4월에는 초·중·고 검정고시 시험이 치러진다. 이번에도 20명이 넘는 만학도들이 합격도전에 나설 예정이다.

 

 

◇“딱 10년만 더 하는 게 목표”

김 교장은 장래 목표가 앞으로 딱 10년만 더 하는 것이라고 했다. 왜 10년만이냐는 물음에 그는 “27살의 나이부터 여기까지 왔는데, 환갑이 지나는 10년 뒤에는 더 이상 경제적 이유 등으로 배움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는 분들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2030년까지만 하자고 다짐해 왔다”고 했다.

김 교장을 괴롭히는 것은 여전히 재정상의 어려움이다. 향토학교는 거의 무료로 진행되고 있다. 운영비를 위해 학생들에게 월 몇 만원씩의 회비는 받고 있지만 그마저도 임대료와 교재비, 각종 경비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도교육청의 평생시설로 등록돼 있지만 몇 년 전 지방재정법이 개정되면서 학력 미인가 시설에 대한 보조금 지원이 중단돼 폐교 위기에까지 몰렸다.

다행히 진주혁신도시로 이전한 한국남동발전이 2015년부터 매년 500만원씩 정기 후원하면서 다소 숨통이 트였다.

그런 김 교장에게 가장 힘이 되는 건 졸업한 제자들이 전하는 감사의 인사다.

“매년 새해가 되면 올해도 잘 넘기자. 다짐 또 다짐하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정말 운영이 어렵지만 배우고 싶어 하는 분들이 줄지가 않으니 또 힘을 내 열심히 끌고 가야죠”

지금까지의 소회를 묻자, “여러 가지 중간 중간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 일을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보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천직으로 생각하고 즐겁게 하려고 한다”면서 “내년에도 또 그 다음해에도 이 학교가 지속되기를 바라면서 배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작은 등불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딸들이 어려울 때마다 정말 큰 힘이 된다.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


 

김민창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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