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차 새터민 "남한가족 사랑에 명절이 따뜻"
13년차 새터민 "남한가족 사랑에 명절이 따뜻"
  • 백지영
  • 승인 2020.01.22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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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 드라마 ‘자상 남편’ 매료돼 탈북
北 명절음식 좋아하는 시댁에 흐뭇
“고생 많았다” 지역민 응원에 힘내

“남한 정착 초기 저에게 명절은 고향과 가족 생각에 홀로 술 마시며 우는 날이었어요. 지금도 여전히 그립지만 ‘우리 아가 왔어?’라며 저를 반겨주는 시댁과 남편을 보면 그 순간만큼은 잊게 돼요”

설 연휴를 나흘 앞둔 20일 오후 만난 13년 차 새터민 김서연(48·여) 씨는 정착 초기보다 한결 여유로운 마음으로 명절을 맞게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씨는 13년 전 혈혈단신으로 한국에 들어와 청주를 거쳐 서울에서 생활했다. 먼저 진주에 정착했던 새터민 친구 추천으로 8년 전 진주로 내려왔다.
이듬해에는 친구 소개로 만난 동갑내기 진주 토박이 남편과 결혼했다. 5년 전부터 진주시 상평동에서 조그만 주점을 운영하고 있다.

남한은 설과 추석을 가장 큰 명절로 치지만, 북한은 조금 다르다. 광명성절(김정일 생일)과 태양절(김일성 생일)이 가장 크다.
“북한에서 추석은 간단히 성묘하는 정도라 명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설은 그래도 새해다 보니 명절 기분을 내죠. 가족들과 송편·만두를 빚어 동네 어르신들께 가져다드리곤 했어요”
가족과 함께 명절을 맞는 행복을 그 당시에는 몰랐다. 남한에 와 홀로 설을 보내면서야 그 소중함을 느끼게 됐다.

명절이면 그를 짓누르던 아픔이 무뎌진 건 진주로 와 남편을 만나고부터. 남편과 시부모의 사랑에 북한식 명절 음식을 만들어 선뵐 여유도 생겼다.
‘입에 안 맞진 않을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만들어간 송편과 만두, 두부밥과 인조고기밥을 시부모님은 참 맛있게 드셨다. 용기를 얻어 가게 밑반찬으로도 내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조리에 손이 많이 가 포기했다.

김 씨는 20대 초반 한국 드라마를 접하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텔레비전 속 한국인들은 모두 잘살고 가정적인 것처럼 보여 ‘한국에 가 한국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첫 탈북 시도 실패 후 북송돼 감옥 생활을 한 4년이 너무 힘들어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열망을 접을 수는 없었다. 재시도는 성공해 2007년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는 탈북 실패로 감옥에서 보낸 4년을 ‘인생의 가장 큰 상처’, 현재 남편과 자상한 시부모를 만난 것을 ‘인생의 가장 큰 성공’이라고 표현했다.


탈북 계기가 됐던 ‘자상한 한국 남자와 결혼’은 성공했지만 힘든 순간도 많다. 익숙하지 않은 세금 제도와 새터민에 대한 편견을 접할 때가 그렇다.


“서울에서 지낼 때 편견을 참 많이 느꼈어요. 취직 면접을 보면 말투 때문에 출신 질문을 받는데 북에서 왔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한국 사람만 채용한다’는 답이 왔어요. 모든 곳이 그런 식이었지요”

그래도 진주에선 편견을 갖고 그를 대하는 사람이 적은 편이다. 김 씨는 진주 사람들에 대해 “과묵하지만 정직하면서 순수하다”고 표현했다. 일부 사람들이 “진주 사람도 살기 힘든데 왜 여기에 자리 잡았냐”라고 할 때면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지만 “열심히 살아라”, “고생 많았다”며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더 많아 힘을 얻는다.

새터민 커뮤니티가 활발히 운영돼 명절이면 함께 떡을 빚는 등 단체 활동을 하는 타지역과는 달리 진주는 관련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지 않은 편이다. 그는 “진주에 있는 새터민들은 타지역보다 먹고 살겠다고 일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다. 다 함께 만나 고향 얘기를 나누며 교류할 기회가 적다”고 설명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그는 이 상황 때문에 진주 새터민들이 빨리 지역 사회에 적응하게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김 씨는 “사회생활을 하더라도 새터민끼리만 만나려 하면 생각 자체가 개방되기 쉽지 않다. 지역 주민들과 교류를 해야 시각이 달라진다”며 “진주에는 새터민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지 않아 더 빨리 지역사회에 녹아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씨는 “남한에서 태어났든 북한에서 왔든 우리는 한 민족”이라며 “출신·학벌이 어떻든 다 같은 사람이니 편견 없이 봐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13년 전 혈혈단신 한국에 들어와 서울생활을 거쳐 진주에 정착한 김서연씨가 그동안 고생했던 일을 담담하게 풀어내며 손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백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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