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의 경제이야기]신화가 된 레스토랑 - 엘 불리
[김흥길의 경제이야기]신화가 된 레스토랑 - 엘 불리
  • 경남일보
  • 승인 2020.01.27 15: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 최고의 식당은 어디에 있는 어느 식당일까? 영국의 권위 있는 음식전문지 <레스토랑>이 전 세계의 저명 음식평론가 560명에게 ‘세계 최고의 식당이 어디냐?’라는 설문조사를 토대로 세계 최고 50대 레스토랑을 선정해 발표했다. 50위 안에 든 레스토랑은 빠리가 아홉 곳, 런던이 여섯 곳, 뉴욕이 세 곳 등이었지만, 세계최고의 레스토랑 1위는 스페인의 까딸루냐 북동부 로사스(Rosas) 해안가에 호젓하게 자리한 엘 불리(El Bulli)라는 레스토랑이 차지했다. 엘 불리는 50대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가운데서 1위 자리를, 2002년, 2006년, 2007년, 2008년 그리고 2009년, 다섯 번이나 차지했고, 2010년에는 2위를 차지했다. 그런데다 세계적인 권위의 ‘미쉘랭 가이드(Le Guide Michelin)’로부터 14년간 최고 등급인 별 셋을 받았다.

전 세계 미식가들이 침을 삼킬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레스토랑이지만, 이 레스토랑은 6월 15일부터 12월 20일까지 연중 6개월간만 문을 연다. 예약은 항상 만석이고, 시즌 중 수용할 수 있는 자리는 8000명에 불과하다. 매 시즌마다 200만 명 이상이 예약을 신청하지만, 예약은 하루 만에 다 차고 만다. 1인당 평균 식사가격은 250유로(32만원) 정도이다. 그럼에도 자리가 나기까지 일이년씩 기다리는 건 기본이다. 취재를 하려고 하니 자리를 확보해달라는 뉴욕타임스의 요청에 엘 불리의 수석 쉐프 페란 아드리아(Ferran Adria)가 “뉴욕타임스니까 2년만 기다리게 해 주겠다.”고 응답한 일화로 유명하다. 엘 불리는 신화적인 레스토랑이라 할만하다.

그럼에도 엘 불리는 2000년부터 적자였다. 수익 창출은 수석 쉐프인 페랑 아드리아(Ferran Adria)가 발간한 저서 등 관련 상품과 강연료 등에서 얻고 있다. 그런데도 엘 불리는 가장 혁신적인 요리를 시도해왔다. 시즌을 마친 아드리아와 요리사들은 바르셀로나의 작은 주방으로 근거지를 옮긴다. 이 주방은 다음 시즌을 위한 실험이 진행되는 실험실이라 할만하다. 이들은 다음 시즌에 사용할 식재료를 선정하고 각각의 재료들이 지닌 가능성을 탐색한다. 재료 각각의 모든 특성은 사진과 문서의 형태로 기록되고 요리사들은 토의를 거쳐 어떤 재료를 어떻게 ‘변형’시켜야 할 것인지 아이디어를 수렴한다. 이 과정을 진두지휘하는 아드리아는 끊임없이 창조성을 강조한다.

매년 새로 개발한 메뉴를 선보인다. 작은 접시에 나오는 40여 가지의 요리는 전 세계 미식가들의 미각을 자극했다.페란 아드리아에겐 ‘천재 요리사’ ‘분자요리의 창시자’ 등 수식어가 그에게 붙는다. 매년 6개월 동안 식당 문을 닫은 이유는 창조 때문이다. 아드리아는 수익의 20%를 음식 개발 비용에 썼다. 지금까지 세상에 없었던 요리를 추구한다. 연구 기간 동안 모든 식재료는 분자 단위까지 쪼개진다. 그의 손을 거친 식재료들은 질감과 맛이 재배열돼 전혀 새로운 요리로 탄생한다. 25년간 아드리아가 만든 레시피는 1846개에 달한다.

정작 요리가 결정되는 것은 그 해의 시즌이 시작되기 전의 2~3주사이다. 개장 준비를 위해 모인 식당 스탭들 앞에서 아드리아는 기성 요리를 잊어버리고 완전히 백지 상태로 시작할 것을 당부한다. 엘 불리는 2000년대 초반 전 세계적 트렌드가 됐던 분자요리의 본산이다. 식재료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맛을 재조직하는 분자요리는 액체질소, 스포이드, 주사기를 주방에 끌어들여 요리의 경계를 확장했다.

단적으로 말해 엘 불리는 ‘요리를 파는’ 레스토랑이 아니다. 왜냐하면 페란 아드리아라는 ‘예술가’가 특정 시간과 공간에 구현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위적인 레스토랑에 식사를 하러 오는 건 창조적인 감정을 느껴 보기 위해서다.” 그는 요리를 통한 감각의 일신을 꿈꾼다. 우리의 미각과 후각을 지금껏 알지 못했고 느껴본 적이 없는 영역으로 데려가려는 것이다. 요리는 그 매개체일 뿐이다. 엘 불리는 조리기술과 미각을 연구하는 비영리 연구센터인 ‘엘 불리 재단’으로 재탄생했고, 2011년 7월 30일에 잠정적으로 문을 닫았다가, 2014년 ‘El Bulli 1846’로 재 오픈을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