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어목혼주
[경일포럼] 어목혼주
  • 경남일보
  • 승인 2020.01.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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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술(국립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
윤창술 교수

2001년부터 매년 교수 설문 조사를 통해 한 해를 요약하는 사자성어를 선정해 온 교수신문은 2019년을 ‘공명지조(共命之鳥)’의 해로 선정했다. 표면적인 뜻은 운명을 같이 하는 새로, 상대를 죽이면 공멸하게 된다는, 분열된 사회에 대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 사자성어다. 그러나 필자는 이와 4% 차이로 선정되지 못한 ‘어목혼주(魚目混珠)’를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표면적인 뜻은 물고기 눈알이 진주(眞珠)와 섞여 있다는 것으로, 무엇이 물고기 눈알이고 진주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보다 다층적인 경고를 보내고 있는 사자성어라고 볼 수 있다. 공명지조는 이미 벌어진 현상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안 좋은 상황에 대한 경고라면, 어목혼주는 이미 벌어진 현상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그것이 진주일 수도 물고기 눈알일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상황 해결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내포한 경고라는 점에서 한 층 더 들어간 것이다.

다사다난했던 2019년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어목혼주를 추천했던 문성훈 서울여대 교수는 그 취지로 “2019년 우리사회에 가장 큰 충격을 준 사건은 누가 뭐래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이다.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던 조국과 윤석열 검찰총장 중 한 사람은 어목이거나 진주일 수 있고, 아니면 둘 다 진주이거나 어목일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2019년은 무엇이 진짜 어목이고 진주인지 혼동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국가적인 층위에서의 취지이겠고, 필자는 서부경남 층위에서의 취지로 ‘번역’해본다면 두 국립대학간의 통합과 KBS진주방송국의 통폐합 건이 해당한다고 본다. 둘 이상에 대한 통폐합은 단순 결과의 성패로만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장기적인 결과의 성패까지도 판단해야 하는 사안이므로 통폐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신중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노력이 더욱 필요한 일이기에, 이 자체가 과연 어목인지 진주인지를 바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맞아떨어진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지만, 필자는 ‘잊은’이라는 말에는 ‘개선하려는 노력 없이 답습하는’이라는 뜻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2019년을 요약하는 사자성어 중 하나로 제시되었던 어목혼주는 다가올 4·15 총선에서 더욱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에서 이겼기 때문에 자신이 진주이고 당신이 어목이었다라는 것을 보장할 수 없고, 승자에게 투표한 유권자들이 어목 사이에서 진주를 가려낼 수 있는 통찰력이 있었다는 것도 보장할 수 없다. 선거 역시 통폐합과 마찬가지로 단순 결과의 성패보다 장기적인 결과의 성패가 더욱 중요하다. 필자는 승자독식주의로 대표되는 극단적인 양극화정치와 기득권정치에 대한 관성에서 벗어나 다원적이고 장기적인 정치로 가는 것이 미래를 위한 역사 읽기이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채택이 그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어목인지 진주인지 바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사회적으로 아직 부족한 지금, 주류 여론이 어목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 하에 비주류 반대론자들의 의견도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첫’걸음이며 ‘준’을 넘어서 완전한 연동형으로 나아가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어목과 진주를 잘 구별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기 위해 사회적으로도 노력해야 할 것이다.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도 벌써 한 달이 지나가고 있지만 도처에 어목혼주의 혼동 상황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무쪼록 질 낮은 갈등과 반목 대신 품격 있는 소통과 화합을 중시하는 진주(眞珠)들이 각 사안의 중심에 서는 한 해가 되어 올해 연말에 발표될 2020년의 사자성어로는 밝은 주제가 선정되길 기대해 본다. 윤창술(국립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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