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단풍
겨울단풍
  • 경남일보
  • 승인 2020.01.28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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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대 (진주시 주택경관과)

아침 출근길 앙상한 가로수 거리의 풍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겨울이 되어도 낙엽을 떨구지 않는 나무가 있습니다. 한겨울 나무의 질긴 애착을 보면서, 우리네 인간의 삶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쉽게 떠나 보내주지 않습니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고달플 때, 곁에 없다는 것이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럴 때 곁에 있으면 얼마나 위안이 될까? 왜 내가 필요할 때는 안 계신 걸까? 원망하는 마음이 뒤섞여 보내주지 못하고, 여전히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헤어진 연인과의 인연 또한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지 못하고, 기억 속에서 지워내지 못해 가슴 아파합니다. 인연이 다하여 다시는 만날 수 없음에도, 애착을 갖고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성인이 된 자식에 대한 애착은 극에 달합니다. 결혼하고 사회구성원으로 독립해서 살아가고 있는 자식들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은 지극합니다. 자식의 삶이 나의 삶의 연장선에 있는 듯, 일생의 숙제인 듯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합니다.

무수히 매달린 마른 잎은 마치 해골과 같습니다. 언제든지 기억을 소집하려는 듯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떨어져 나가지도, 밀어내지도 못하고 방에만 처박혀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 같습니다.

가을이 깊어지면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기 위해 떨켜를 만듭니다. 그런 것처럼 사람 또한 매사에 떨켜를 만들어, 새로운 생명의 순환 고리를 이어가야겠습니다.

때가 되면 모든 것과 이별을 해야 합니다. 쓸쓸했던 젊은 날의 고독과도 이별해야 하고, 아픈 기억들과도 이별해야 합니다.

머지않은 봄날 온 천지가 요동칠 때, 생명은 후끈한 땅의 기운에 기대어 싹을 틔우고, 잎을 키우고, 다시 열매를 달아놓을 것입니다. 계절은 언제나 우리 곁을 지나가고 있지만, 잠시 머물다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계절 속을 살아가는 모든 것들과, 계절을 만들어가는 모든 조건도 시간의 사슬처럼 이어가지만, 언젠가는 그 시간의 사슬을 끊고 모든 것과 하나가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바람에 온 몸을 맡기는 풀과 같이, 햇살에 가슴을 열어주는 꽃과 같이, 윙윙거리는 벌들의 향연 속으로 걸어가는 시간들 속으로 한때는 찬란했던, 한때는 화려했던 날들조차도 다 내려놓고, 홀연히 바람 속으로 햇빛 속으로 걸어 나가야할 것입니다. 때가 되면 천 길 낭떠러지라도 뛰어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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